열수레의 책읽기

[연을 쫒는 아이] 너를 위해서 천번이라도 그렇게 해 주마

슬슬살살 2019. 6. 2. 13:53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발음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아프리카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여럿일 것 같다. 전 세계 최빈국, 탈레반 치하에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며 치안이 엉망인 나라. 몇년 전 말 안듣고 들어갔다 납치 된 선교단이 갔던 곳. 어쨌거나 우리의 아프가니스탄은 엉망 진창인 나라 정도로 뇌리에 있다. 그런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단순히 동정의 대상에 그치는 것 뿐일까.

 

20세기 초에 영국인들이 깨달았던 것을, 소련인들이 1980년대 말에 결국 깨닫게 될 것을, 그 인도 애 역시 곧 알게 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독립적이라는 것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관습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규칙을 혐오한다. 그리고 연날리기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규칙은 간단했다.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이었다. 연을 날려서 상대방 연줄을 끊으면 된다. 행운을 빌 뿐이다.


아프가니스탄은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나라다. 양심과 약속을 중요시 하고 전통적, 종교적 가치관을 신념처럼 가지고 살아 간다. 탈레반 이전의 아프가니스탄은 상당한 수준의 산업국가였다 여성들은 스커트를 입고 대학에 갔으며 가게마다 활력이 넘쳤다. 계급 사회이긴 했지만 나름 국가다움을 가지고 있었고 겨울이면 연날리기 대회가 전국에서 열렸다. 그러던 나라가 탈레반 집권 이후 엉망 진창이 되어 버렸다. 원래부터 가난했던 것과 가진것을 잃어버리는 건 천지차이다. 아프가니스탄은 끊어진 연처럼 되어 버렸다.


<연을 쫒는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망명한 한 소년의 성장을 그리고 있다. 성장에는 고통이 따르는데, 일반적인 수준의 것이 아니라 나라를 잃고 형제를 잃고, 거짓말의 치욕을 가슴에 품고 아버지를 잃는 정도의 고통을 겪는다. 이 고통들을 통해 소년은 성장한다. 배경이 되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는 우리의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잡아 준다.


이야기의 시작은 하자라인인 하산부터 출발한다. 주인공인 아미르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도련님이고 하자라인(하급 종족) 하인의 아들, 하산과 형제처럼 지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하자라인은 천한 일만 할 수 있는 계급이지만 그런걸 신경 쓰지 않는 신사 '바바'아빠 덕분에 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하산을 괴롭히는 것을 모른체한 아미르는 결국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산'을 내쫒게 되고 이 사건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이 장악하게 되고 아미르와 가족들은 미국으로 탈출한다. 어려운 생활 끝에 미국인들 사이에서 자리잡은 아미르. 하지만 '하산'의 죽음과 그 아이들이 고아원에 있다는 사실, '하산'이 사실은 배다른 형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죽음을 무릅쓰고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다.


바바가 두 손을 공손하게 가슴에 대고 카불에서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통로를 거닐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가판대를 지켰다. 전직 대사들, 실직한 의사들, 대학교수들과 나란히 기계공과 재단사들이 중고 모직코트와 벗겨진 자전거 헬멧을 팔고 있었다.


결국 아프간의 부유층만이 간신히 탈출한다. 나머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재미있는 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핍박받는 하자르인이 소수였다면 미국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소수다. 그리고 9.11 이후에는 어마어마한 핍박을 받는다. 그것이 불합리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한켠으로는 그동안의 업보를 다시 돌려받는 것 같은 씁쓸한 생각이 든다.


"만약 샤르 에 나우 구역에서 파르완 구역으로 카펫을 사러 갔다가는 설사 검문소를 모두 통과했다 해도 저격병의 총에 맞아 죽거나 로켓에 폭사당할 각오를 해야 했다. 실제로 옆 구역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집에 콕 처박혀서 다음 로켓이 자기 집에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사람들은 집 담에 구멍을 낸 다름 위험한 거리를 피해 이 집에서 저 집에 난 담 구멍을 통해서 옆 블록으로 옮겨다녔다고 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땅 밑으로 굴을 파서 옮겨 다녔다.


탈레반이 집권한 이후의 아프가니스탄은 지옥으로 변한다. 자유로운 사회가 한순간에 통제와 무력의 혼돈으로 빠졌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일부는 탈출하고 일부는 남아서 고통을 견딘다. 또 어떤이는 적극적으로 침략자에 협력하기도 한다. 분명한 건 남은이와 떠난 이 모두 갈래 갈래 분열해서 서로를 증오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시 50여년 전에 겪은 사건이자 현재에도 진행되는 비극이다.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들을 모아서 짐을 꾸린 다음 한밤중에 예고 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


지옥같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이 배신했던 배다른 형제 하산의 아들을 구해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아미르는 자기자신이 용서받았음을 느낀다. 소년은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