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포스터를 가진 영화로 기억한다. 전라의 남녀들이 바닥에 잔뜩 누워 있고 그 가운데 홀로 서 있는 남성의 이미지로 된 영화 포스터. 어쩌면 포스터가 아니라 스틸컷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꽤나 도발적인 사진 한 장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이 영화의 원작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동명 소설이고,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얼마전 소설은 다 읽었다. 예상은 했지만 꽤나 충격적이었다. 냄새에 특화된 일종의 돌연변이이자 사회적 아웃사이더 그루누이. 사회로부터 냉대받던 그가 오로지 지상 최대의 향기를 얻기 위한 기상 천외한 노력들이 이 소설에 담겨있다.
일종의 환상 문학인 이 소설은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살인, 섹슈얼리즘, 영웅담, 반사회성 등등. 그러나 단순한 자극적인 소설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은 인간성이라는 부분이 얼마나 허황된 이미지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살인, 간음, 식인에 이르기까지 삶을 제어하는 수많은 터부가 향기라고 하는 원초적 감각에 의해 무너질 수 있는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은 인간 스스로를 저 아래 바닥에 있는 바퀴벌레만큼이나 무의미한 동물로 그 지위를 떨어 트린다. 이성의 통제를 잃어버린 인간의 적나라함을 들여다보는 일은 불편하다.
작가는 인간을 욕망의 덩이리로 본 것이 분명하다 인간은 너무 타락해 정화가 필요하며 그 정화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방식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이 소설을 통해 밝힌다.
이제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악취를 풍기는 이 멍청한 욕망 덩어리들을 이 땅에서 싹 쓸어 버리고 싶었다. 언젠가 칠흑같은 어두운 영혼의 세계에서 낯선 냄새들을 섬멸했던 것처럼. 또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그들을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 깨닫게 해 주고 싶었다. 그에게 있어 유일하게 진실한 감정인 이런 증오심에 대해 그들 역시 증오로 답해 오기를.
미움받고 미움받는 그루누이는 향수의 힘으로 사회에 돌아오고 명망가가 되었다가 다시 살인자가 된다. 그리고 다시 향수의 힘을 빌어 인간들을 농락하다가 결국 향기의 힘으로 그들에게 먹히고 만다.
마치 손 끝에 밴 악취가 거슬리면서도 계속 맡아보는 것 처럼 거슬려서 계속 읽게 되는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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