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악질경찰] 끝까지 간다와 악인전의 중간에서

슬슬살살 2019. 7. 2. 23:22

세상은 이제 정의로운 이보다 악(惡)에 더 열광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의인보다는 악인이 더 많은 시대니까. 그래서인지 요즘 영화에서의 주인공은 츤데레적인 악인들이 많다. 이선균이 전작인 <끝까지 간다>에서 뒷 돈 정도 해먹는 경찰을 선보인데 이어 이번에는 뼛속까지 악당이다. 최근 개봉한 <악인전> 역시 더러운 성질의 결찰과 조폭이 살인마를 잡는 내용이다.  <청년 경찰>같은 순수하고 정의로운 영웅은 이제 매력을 보이지 못한다.

"이런 것들도 어른이라고"


이 영화는  이 악당이 한 소녀를 만나면서 회개까지는 아니지만 마지노선 근처에서 방황하는 이야기다. 우습지만 악에도 선이 있다. 넘어서는 안될 선, 그 선 위에서 넘을듯 말듯 갈등하는 이선균의 모습이 위태롭기만 하다. 씨발을 입에 달고 사는 걸레같은 입을 가진 경찰이지만 가출한 소녀에게 차마 '년'까지는 붙이지 않는 선이랄까. 별거 아닌 부분이지만 어색할 정도로 그 '년'자를 붙이지 않는 영화다. <악질경찰>은. 그래서 이선균은 경찰에서 범죄자로 전락하지만 끝까지 '어른'으로 남을 수 있었다.



억지로 세월호를 집어 넣은 것은 아쉬웠다. 현실세계의 가장 큰 비극인 세월호가 영화에 투영되면서 영화적 허용이라 여길 수 있었던 모든 장치들이 어설픈 거짓말로 둔갑해 버렸다. 현실 세계에 무지 나쁜 경찰은 있을 수 있지만 말단 형사 따위가 감찰반이고 서장이고를 개무시 할 수 있는 사회는 아니다. 대한민국이. 영화건 문학이건 관객, 독자와 일종의 약속을 하게 된다. 개가 말을 하거나 경찰이 압류품 창고를 털거나 가상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고 관객과 입을 맞춘거다. 그런데 그게 느닷없이 현실의 사건으로 이어지게 되면 리얼리티의 눈높이는 훌쩍 오르게 마련이다. <악질 경찰>은 그래서 실패했다. 차라리 유사한 가상의 대형사고를 만들어 넣었어야 했다. 그래서 <끝까지 간다>처럼 긴장감 넘치지도, <악인전>처럼 통쾌하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