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단해서 미안하다. 투박한 한국 코메디를 연상케 하는 제목과 포스터는 주인공이 공효진과 조정석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게 만들었다. <건축학개론>이후에도 다양한 작품에서 스펙트럼을 넓혀왔던 조정석과 작품은 적지만 그 하나하나가 본인 중심으로 만들어버리는 연기 마녀 공효진이 투톱인 이 영화를 섣불리 판단했다. 조정석은 처음 맡은 악역에서 꽤 괜찮은 퍼포먼스를 보였다. 소름끼치도록 악랄하진 않지만 페이소스 있는 악인으로 훌륭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또, 설렁설렁해 보이지만 치밀한 내공을 가진 공효진은 명불허전의 연기를 선보였다. 류준열은 좀 틀에 박히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뿐만일까. 반전의 주인공인 염정아 역시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한마디로 평범한 시나리오를 연기와 캐릭터로 살린 영화다.
F1에서 드라이버로 자수성가한 조정석의 뺑소니 사건과 이를 빌미로 큰 건(조정석과 경찰 고위층의 커넥션)을 잡으려는 특수반과 뺑소니 그 자체를 잡는 뺑소니 전담반의 수사가 서로 얽히고 얽힌다. 둘 다 목표는 하나지만 의도가 다르다. 어찌 됐건 고위층의 비리가 일개 뺑소니 사건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특수반의 인식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라는 성장 지향적인 논리가 담겨있다. 당연히 가치와 기회의 평등, 인간의 평등을 당연스레 받아들이고 커 온 요즘 아이들에게는 꼰대같은 논리다. 반면, 류준열을 중심으로 한 뺑반의 활동은 신파적이고 작위적이지만 멋지다. 우리는 경찰을 공무원이 아닌 히어로로 기대하지 않던가.
뺑반의 진짜 주인공들은 단순한 경찰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숨쉬는 히어로를 등장시켰다. 당연한 가치를 당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리도 멋지다는 것은 현재의 사회가 그렇지 않다는 반증이 아닐까. 우리는 히어로, 그것도 우리와 동등한 히어로를 원한다. 가난하다 무시받던 조정석의 과거가 그를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이유다. 마치 후속작이 나올 것 같아 기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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