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드라큘라] 몬스터 장르의 시작에서

슬슬살살 2019. 7. 30. 22:48

그의 얼굴은 억센 독수리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콧날이 날카롭고 콧마루가 오똑하며, 코끝리 삐죽하게 아래로 숙여져 있다. 이마는 됫박을 얹어 놓은 것처럼 불거져 있고, 살쩍에는 털이 버성기지만 머리숱이 많고 곱슬곱슬해 보인다. 눈썹도 숱이 많으며, 콧마루 위쪽에서 거의 맞닿아 있다. 두툼한 콧수염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입매는 딱딱하고 조금 잔인한 느낌을 주었고, 기이하게 날카로운 하얀 이가 입술 위로 비죽 나와있는데, 그 입술이 유난히 붉어서 그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싱싱함을 느끼게 한다. 또, 귓바퀴는 파리하고 끝이 매우 뾰족하다. 턱은 넓고 억세며, 뺨은 여위였으나 단단해 보인다. 그의 얼굴이 주는 전체적인 인상은 대단히 창백해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드라큘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수많은 장르 문학 사이에서도 피를 빨고, 전염성이 있으며 강한 힘에 더한 성적 매력까지 갖춘 드라큘라는 독보적인 위치다. 인간이 아닌 어떤 것을 표현할 때 흡혈귀만큼 독창적인 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만큼 드라큘라는 인간의 문화사에서 중요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드라큘라>의 원전을 읽는 건 꽤 중요한 면을 지닌다.

소설 <드라큘라>는 각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그들의 기록을 섞어 놓은 형식을 띤다. 일기와 메모, 전보와 편지, 신문기사들을 시계열로 나열하여 객관성을 부각시킨다. 이런 방식은 환타지스러운 소재에 리얼리티를 불어 넣는다. 감정을 싹 뺀 기록에서 느껴지는 섬뜩함과 공포는 영화보다 긴장감 넘친다. 오히려 이렇게 전해지는 공포가 더 무섭다. 게다가 기록을 통해 독자가 알고 있는 여러 정보가 소설 속 인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다는 점에서 <드라큘라>는 무서움 뿐 아니라 답답함까지 선사한다. 

구약성서 신명기: 그러나 어떠한 일이 있어도 피만은 먹지 못한다. 피는 곧 생명이라, 생명은 고기와 함께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큘라>는 짙은 종교색을 가진 소설이다. 애초에 흡혈귀라는 개념 자체가 성서에서 출발했을 뿐 아니라 드라큘라에 대항하는 4명의 남자는 짙은 신앙심과 신사가 갖춰야 할 명예에 따라 움직인다. 일종의 낭만주의가 소설 전반에 걸쳐 짙게 배어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7명의 남녀다. 맨 처음 드라큘라에게 갇혔다 탈출한 아서와 그의 연인 미나, 미나의 친구 루시와 그녀를 사랑하는 세 남자 - 퀸시, 수어드, 조너선 - 마지막으로 반헬싱 박사가 등장한다. 이들은 힘을 합쳐 런던으로 진출한 드라큘라를 괴멸 시키고, 흡혈귀에 의해 육체를 빼앗긴 루시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한다. 이들의 가치관은 지극히 기독교적이며 그러한 모습이 어색하지만 꽤 멋지게 보인다. 이들의 과한 기사도와 신사정신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뱀파이어라는 소재지만 원조가 가지고 있는 에로시즘, 젠틀함, 세련된 공포는 반드시 이 소설을 읽어야만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왜 뱀파이어에 매력을 느끼는지 이 소설이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