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의 글쓰는 방법

슬슬살살 2019. 9. 23. 22:19

최근 10년동안 읽은 책 중에 가장 강렬했던 소설이 '7년의 밤'이었다. 장르 소설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 묻어 있는 인간에 대한 고찰은 순수문학에 비해서도 결코 기울지 않는다. '네 멋대로 해라'부터 '종의 기원'까지, 정유정의 작법은 경쾌하고 완벽하며 독자를 행간 안에 완벽하게 붙잡아 둔다. 간호사와 직장인의 삶을 살다 마흔이 넘어서 데뷔한 이만이 가질 수 있는 기획력이 그녀의 소설 곳곳에 비친다. 인터뷰 형식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그녀가 소설가로서 살아가는 방법, 소설을 쓰는 방식에 대한 조언서라 할 수 있다. 그녀가 그렇게도 존경한다는 '스티븐 킹' 역시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글쓰기 방식을 공개한 바 있는데 그 발자취를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소설은 그저 현실도피용 도구가 아니다. 낯선 삶, 우리가 경험한 적이 없는 삶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적극적으로 살아보게 하는 모험적 도구다. 이 경험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확장시킨다.


문학은 인간 정신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상상이 없고 허구의 세계가 없다면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재미 없겠나. 그걸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이 이야기꾼이다.


그녀는 소설을 시각의 확장 도구로 바라본다. 독자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모험을 통해 간접적인 기회를 제공한다는 기본적인 소설의 역할이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다. 한마디로 정유정은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서 쾌감을 얻는 사람인거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번다니, 참으로 부럽다. 물론 그 일하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지난한 끈기를 필요로 하지만. 그녀는 이야기 '꾼'으로서 일하는 자신에 대해 무척이나 만족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는 인터뷰 형식을 빌고 있다. 이런 형식을 통해 그녀는 성공한 작가로서 '꼰대'로 비춰질 수 있는 가능성을 버리고 객관적인 입장에 설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영리한 기획이었다.


작가는 자기가 만드는 세계에 대해 신처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세계에선 파리 한마리도 멋대로 날아다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정유정'이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무척이나 흥미롭다. 노트에 시놉을 만들고 충실한 자료조사를 통해 그녀만의 세계관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은 마치 게임 기획자 같기도 하다. 일일히 배경을 그려 넣고 시간과 공간을 쌓아가는 꼼꼼한 작업을 알고 나면 다시는 그녀의 작품을 쉬이 흘려 읽지 못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