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종의 기원]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슬슬살살 2019. 9. 28. 15:21

(스포 있음)


근친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까지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다. 그것도 그 사이코패스의 일인칭 시점으로 기술한 특이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인 유진의 시선을 따라가는 이 소설은 왜 유진이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를 담아내면서 그에 따른 유진의 감정변화를 상세하게 그려낸다. 실제 사이코패스의 정신 변화나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다.


두 여자는 '포식자'를 평생토록 가둘 무형의 감옥을 구상했을 것이다. 무탈하고 무해한 존재로 살 수 있도록, 사람 속에서 살되 사람과 어울려 살지는 않도록. 그 결과 나는 대학 졸업을 앞 둘 때까지 밤 9시면 귀가를 해야 하고, 혼자서는 여행조차 갈 수 없는 어린애로 남게 된 것이었다.


유진은 어린시절 작은 질투, 또는 치기 어린 경쟁으로 친 형을 살해했지만 그에 대한 기억을 잃는다. 때문에 살인을 목격한 모친과 정신과 의사인 이모에 의해 매일 약물을 먹으며 자기를 제어하지만 이유를 모른다. 그저 구속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을 뿐. 그러다, 어느날. 유진 안의 '악'의 본성이 점차 깨어난다. 처음에는 여자들을 놀래키는 수준이었지만 살인을 저지르고, 모친을 살해하고 이모를 살해하며 종국에는 가장 친했던 해진까지 죽이고 만다.


내 얼굴을 더듬듯 바라보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나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어머니의 두려움을 어머니처럼 느끼지는 못했지만 머리로 헤아리는 건 가능했다. 그래, 그럴 수 있겠다. 무서울 수 있겠다. 그런데 내가 왜 그 두려움의 희생양이 돼야 하나. 내가 부작용을 감수하고 약을 먹듯, 어머니도 두려움을 감수하고 나를 지켜봐주면 안 되는 건가. 그러면 어머니와 내가 공평해지는 거 아닌가.


놀라운건 살인이 아니라 유진의 심리상태와 그것을 그려내는 정유정의 솜씨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친을 죽였기 때문에 이중인격 같은 것으로 판단되어 '선한' 유진을 동정할 수도 있었건만 기억 잃은 유진 조차도 모친의 죽음에 대한 슬픔 보다는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하지'에 천재적인 집중력을 보인다. 일련의 여러 살해나 정황 등에 있어 감정이란 것을 전혀 못느끼는 상황. 우리는 유진을 통해 유영철 과 같은 살인마의 심리상태를 알아 볼 수 있다.


불길 같은 흥분이 신경절을 타고 온몸으로 내달렸다. 숨이 차올랐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서 현기증이 났다. 내가 칼을 쥔 게 아니라 칼이 내 손을 거머쥐고 여자 안으로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저항이 용납되지 않는 무지막지한 장력이었다. 눈 앞이 와르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칼을 쥔 손이 저릿저릿해왔다. 음속을 돌파하는 듯한 충격이 몸을 덮쳐왔다. 머리속 어딘가에선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실낱같아 열려 있던 이쪽 세상과의 통로가 닫히는 소리였다. 나는 내가 다른 세상의 국경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도, 돌아갈 의지가 없다는 것도.


한 마디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연쇄 살인마 정남규가 표창원에게 그랬단다, '당신이 알아내서 내가 왜 그러는지 알려 주시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내면 안에 웅크린 '악'-누구는 크고 누구는 작긴 하지만-에 대해 보다 냉정하게 들여다 볼 기회를 가진다. 나 역시도 타인의 고통에 대해 다른 이보다 둔감하게 느끼는 편이다. 그것이 정도의 차이를 가질 뿐이지 인간이 누구나 같은 감정 스펙트럼을 가질 수는 없다. 재밌는 건 독자들은 대부분이 '정상'인이기 때문에 소설속 주인공 '유진'에게 일말의 동정을 가진다는 거다. 본인이 태어나고 싶어서 그렇게 태어난 것도 아니고, 타인에 의해 구속받는 삶을 살다 폭발하는 건 어느정도 용인의 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리라. 괴물로 태어났다 해서 반드시 괴물로 자라지많은 않을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