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하루키 식의 예측 불가능한 환상 단편. 먼저 포르노지가 겨울 박물관인지 겨울 박물관이 포르노지인지 불분명하다. 무슨 얘기냐면 도대체가 하루키가 뭐를 얘기하고 싶어서 뭐를 빗대었는지를 모르겠다는 뜻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섹스를 겨울 박물관에 빗댄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살피다 보면 실제로 이야기하고 싶은 건 겨울 박물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겨울 박물관은 과거의 영광이야 어떠하든 늙은 맹수처럼 가만히 있다. 간혹 들숨과 날숨을 쉬는 모습에 어깨가 들썩이며 이것이 그나마 과거에 대단했던 위세를 짐작하게 할 뿐이지만 정작 그 대단함은 직접 와닿지 않는다. 마치 성행위를 포르노지로 대체한 것처럼.
왜냐하면 나는 섹스에 대해서 생각하면 언제나 겨울 박물관에 있고, 우리들은 모두 거기에서 고아처럼 쪼그리고 않아 따스함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손잡이가 달린 냄비는 부엌에, 쿠키는 서랍에, 그리고 나는 겨울 박물관에 있다.
환상 속에 있는 듯한 기술이 하루키의 특징이지만 이 단편은 유난하다. 결국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이것 저것 해보지만 결국에는 당연한 것처럼 외로이 있다는 뜻이다. 마치 겨울 박물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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