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이 넘어가는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6.25 다음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무얼까.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세월호가 있고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생겼던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일들이 있다. 그리고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같은 일 처럼 내가 세상을 인식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도 역사 속의 상처들이다. 그러나 그 많은 상처 중에서도 가장 크고 깊은 상처는 단언컨데 5.18이다. 아직까지도 법적인 진상 규명 외에 수많은 유언비어를 내놓고 있으며 국민을 이상한 이념대립으로 몰아가는 이 사건은 그야말로 특정 인물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에서 진실로 惡한 사건이다. 그 세월호 조차도 인간의 욕심과 탐욕이 겹쳐서 일어난 인재인데 광주민주화 항쟁은 권력의 유지와 독재를 위한 고의적 사건이라는 측면에서 훨씬 더 깊은 상처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이 아픈 상처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이다. 목숨을 걸고(수사적인 측면이 아니라 진실로) 기록한 이 책은 방대한 양의 메모와 기록, 공문서의 내용, 기사, 증언을 모두 담고 있다. 광주의 피 위에서 세워진 민주국가의 시민이라면 당연히 읽어야 할 책이다. 게다가 이 책은 음모론자들과 작은 의심을 품고 있는 몇몇 시민을 위해서도 훌륭한 답변을 한다. 예를 들면 북한군의 소행이다라는 말은 믿지 않지만 대다수 좌익 운동권들이 일으킨 사건이다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꽤 되는데 <넘어넘어>에 따르면 광주에는 4가지 부류의 시민들이 있었다.
첫째, 시사적인 상황에 민감하고 정치 상황에 대응하는 힘이 가장 강력하던 학생운동권이다. 둘째, 유신독재 시절부터 투옥을 당하거나 자기 희생을 치르면서 자연스럽게 결집한 종교인, 문인, 언론인, 교수, 청년 등 이른바 재야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있었다. 셋째, 김영삼 등 제도권 야당 정치인과 유신 체제에 정면 도전하면서 끊임없이 제도권 진입을 목표로 한 김대중을 비롯한 재야 정치권 인사들이다. 넷째, 1970년대 생존권 투쟁을 통하여 성장한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민중운동이다.
물론 초창기의 시위는 운동권 학생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으나 급박하게 투입된 군인들의 강경 진압은 둘째 부터 넷째에 이르는, 범 계층이 모두 참여하는 시위로 퍼져 나간것이다. 게다가 <넘어넘어>가 싣고 있는 잔인한 진압을 읽다보면 나라도 총을 들고 강경한 투쟁을 했을 듯 하다. 실제로 가장 극렬하게, 폭력적인 대응을 한 이 들은 운동권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변모한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운동권은 폭력에 굴복하거나 기회를 살피는 측면이 많았지만 분노한 시민들은 그야말로 자살특공대나 마찬가지였다.
"무기를 반납하면 광주 시민의 피와 생명의 대가를 보장받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였다. 무기 회수에 나선 수습위원들은 "모른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시민군들은 "그렇다면 무기를 내놓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시민들은 계속해서 정당한 요구를 했다. 피의 대가. 그것은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 이후 안전에 대한 보장이었는데 그 당연한 것도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광주의 선택은 한가지 뿐이었다.
군부의 언론 통제는 광주 시민이 타 지역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비폭력 투쟁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렸다.'
게다가 봉쇄된 광주는 퇴로까지 막혔기 때문에 시민들의 선택중 도망이라는 마지막 평화적 선택지조차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반면, 공수부대를 투입한 전두환 일행은 독재의 유지라는 지상 과제가 있었기 때문에 온갖 명분을 다 끌어 대서라도 무조건 적인 광주의 항복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이런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일 필요도 있었다. 그렇다면 공수부대원들은 어째서 그리 난폭하게 진압을 했을까?
"광주에는 지금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을 씨를 말리려 한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돼 광주시민들이 격분하고 있으니 서울 출신 최장군이 현장에 가서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때도 역시 광주 시내에는 아직 그와 같은 유언비어가 퍼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유언비어가 확산 된 것은 오후 4시부터 시작된 7공수여단의 잔혹한 진압 이후부터였다.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현실이 유언비어 확산의 비옥한 토양이 됐다.
일단 위에서 시킨 것도 있었지만 악랄한 군 수뇌부는 시민과 군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작전을 펼쳤다. 잔인한 방식으로 진압하게 하여 시민들의 폭력적인 대응을 이끌어내고, 극도로 긴장한 공수부대원이 더욱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게 하는 폭력의 악순환을 만들었다. 그리고 도중에 부대를 변경하면 새로 투입된 군인의 입장에서는 격렬하게 저항하는 시민들만을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전술이 현재까지도 당시의 상황이 정당했다 기억하는 군인들이 많은 이유가 아닐까.
<넘어넘어>는 광주에 대한 기록이자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희생 위에 서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다면 수많은 헛소리들이 얼마나 비겁하고 악랄한 이들의 개소리인지 판단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40년이 지나는 유공자들이 왜 사회적 혜택을 받아야 하는지도 잘 이해가 간다. 시간이 지나 우리 딸이 5.18을 배우는 때가 된다면 적어도 이 책을 절반 정도는 읽혀 보리라. 얼마전 전두환이 호화 골프를 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할 때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칠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은 수많은 정치인들과 기자들이 둘러 싸고 화려하게 치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 그를 잊거나 용서해서는 안된다. 국민 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그에게 주어지는 많은 것들에 비해 희생자들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대우를 받고 있는지.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유를 일부 제한하더라도 루머나 유언비어, 문제가 있는 발언에 대한 검열을 해야 한다 생각한다. 우리가 받은 자유를 생각하면 그들을 위해 일부를 반납할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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