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 시도는 좋았지만 여전히 어렵다

슬슬살살 2020. 1. 1. 12:33

영화를 다 보게 되면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이걸 잘 살펴보면 '미술'이라는 역할이 있는데 왜 하필 미술이라는 용어를 썼을까. 사실 미술이라 하면 회화나 조각 같은 하나의 창작 예술을 지칭할텐데 말이지. 아마도 영화의 시각적인 면을 만들어주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표현 양식 대부분을 미술이라 칭할 수 있다면 영화야 말로 미술이라는 말에 적절한 장르가 아닐까. 예전에 사진을 잘 찍고 싶다고 했더니 그림을 많이 보라는 답을 얻은 적이 있었다. 그림의 구도, 빛이 들어가는 방식, 주제를 드러내는 기법 등은 수천년에 걸쳐 쌓아 올린 미술의 노하우를 공부하라는 뜻이었다. 영화도 미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형식적인 면에서 많은 모티브를 가져왔다.

이 책은 영화가 미술로부터 가져온(저자는 훔쳐왔다고 표현했지만)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아무래도 미술은 어렵고 영화는 쉽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미술에 대해 좀 알 수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가 있는것 같다. 거기에 영화 잡지 <씨네21>에 연재했던 칼럼들이기 때문에 매 편이 짧아서 읽기가 좋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다루고 있는 영화가 너무 매니악하다. 다루고 있는 서른편이 넘는 영화작품 중에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배트맨>정도가 메이저 영화라면 너무 과할까? 그 외에 이름이 알려진 영화들도 난해하기 그지 없는 작품들이다. <싸이코>, <파란대문>이면 양반이고 <붉은 사막>이나 <사랑, 오후>같은 영화들은 이름조차 생소하다. 저자 한창호는 말머리에서 본인은 영화의 형식적인 면에 끌린다고 했었다. 쉽게 말하자면 영화의 스토리보다는 그걸 표현하는 이미지네이션에 더 집중한다는뜻인데 그러다 보니 이런 예술 영화들이 많게 된 것 같다. 하기야 옛날부터 씨네21은 좀 매니악한 면이 있었다.

 

이 책은 각 영화의 장면들이 나타내는 이미지와 그에 대응하는 미술작품을 통해 형식이 나타내고자 하는 메세지를 추론해 나간다. 예를 들면 <아이즈 와이드 샷>의 황금색 반짝이는 무도회 장면과 클림트의 일련의 금색 작품들을 동일선에 놓고 에로스적 요소의 차용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여성을 바이올린으로 표현한 앵그르의 바이올린과 <사랑, 오후>에 나오는 여인 누드의 뒷모습에서는 육감적인 여성의 표현방식을 빌렸다 말한다.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 특히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 생소해 공감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시도는 좋았지만 여전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