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곽재구의 예술기행] 시인의 감성으로 읽어낸 여행의 의미

슬슬살살 2020. 1. 11. 16:58

곽재구 작가는 시인이다. 시에 대해 알지 못하니 자연히 곽재구라는 이름 석자도 이번에 처음 들었다. 이 책은 이 시인이 전국(정확히는 남도 쪽이지만)을 여행하며 사색하고 느낀 것을 써내려간 여행기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그 흔한 보물, 문화재 한 점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이 시인이 여행에서 만난 자연, 맞은 느낌, 스며든 생각이 고스란히 적힌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긴 설명을 대신하는 시 한점 한점이 가슴 속을 파고 든다. 아름다운 화개장터 한 켠에서 대장간을 꾸리고 사는 탁수기씨에 대한 긴 설명 대신 읊은 한 편의 시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한 인생을 압축해 놓았다.


탁수기씨는 화개 장터에서
반달낫 갈며 한 오십년 살았지.
화개나루에 소금배 들고 복사꽃 피던 이팔 청춘에
처음 쇳물 끓이고 풀무질 익혔지.
된장 내음 땀내 적시는 저녁 나절이면
운천리 백사장에 누워 하늘의 별을 세었지.
아니 아니 운천리 안열 부락 김초시네
둘째딸 생각으로 별이 보이지 않았지.
작은 토담 타고 돌다 칡꽃 한 묶음 깨금발로 던지면
꽃내음보다 먼저 토방문이 열리고
그때 처음 사랑을 알았지.
섬진강 푸른 강물과 지리산 산바람이
어느 산곡에서 속삭이다 함께 어둠에 드는지도 알았지.
그 이쁜 전라도 가스나 동란 끝나고 죽었지.
산사람 밥 한 솥 푸짐하게 해낸 죄로 강물되어 떠났지.
탁수기씨 화개 장터에서 한 오십년 살았지.
고스레 고르세 거칠은 강바람에 소주 한 잔 부으며
앞으로도 한 백년 운천리 백사장 별을 헤겠지.
- 화개장터, 곽재구


화개장처에서 일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와, 하동의 아름다움, 그 시대와 개인의 아픔이 한꺼번에 녹아 있어 읽는 이의 속을 뒤짚어 놓는 시다. 개인적으로는 소름이 돋았다. 마침 올 한해 하동을 자주 방문한 터라 더더욱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청학동 방문기는 더더욱 무릎을 치게 한다. 시골이라 해서 언제까지 불편하게 사느냐마는 옛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는 변화가 불편할 따름이다. 젊은 시절 청학동을 찾아 미당 서정주의 시비를 감상했던 곽재구 시인은 이사간 시비의 위치에 불만을 갖는다. 이처럼 작은 변화도 추억 여행을 하는 이에게는 커다랗게 다가오는 법이다.


동운암으로 가던 호젓한 숲길에 자리했던 미당의 시비는 지금은 정류장에서 경내에 이르는 대로변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시비가 차지할 최적의 자리를 마다하고 신흥 아파트 단지의 상가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셈이었다. 켄터키 치킨이나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주는 가게가 자리했으면 적당할 자리였다.


곽재구 시인은 이 시비의 변화를 가리켜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끝까지 건사디지 못하는 시대라 통탄했다. 하지만, 비디오가게와 아파트 사이에 있는 시멘트가 지금의 생활양식이라면 이 또한 시간이 지나서 아름다움을 가지게 될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얹혀진 서정주의 시비를 그리워 하는 어떤 이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추억은 상대적인 거다.

모든 여행이 혼자라는 것은 여행의 기본 수칙이다. 둘 혹은 그 이상이 함께 떠들고 자고 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여행은 아니다. 고독, 우수, 열정, 신비, 설레임, 그리고 자신과의 만남, 그 속에 여행의 진짜 의미가 있다.


이 여행기는 철저하게 고독하고 쓸쓸한 성찰의 시간을 담는다. 그 흔한 먹거리 하나 등장하지 않고 관광지의 모습,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없다. 그냥 지방의 어느곳에 가서 그 지방에 얽힌 문학가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전부. 그러나 그 속에서 통찰과 사유의 시간을 가지게 되고 독자는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 받는다. 이 책 속에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와 칠흙같은 어둠, 막걸리에 취해 주정을 하는 얼굴 붉은 할아버지와 불친절한 노점상, 산꼭대기 암자에서 바라보는 일출 따위가 얽히고 섥혀 있다. 그 어떤 로맨스도 특별한 경험도 없지만 실제 우리가 여행을 가서 느끼는 어떤 감정들이 이 책 속에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