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대 대부분의 취미나 하고 싶은 일을 물어 보면 8~90%는 '여행'이라 답한다. 여행이 취미이건 꿈이건 진실인 것은 많은 이들이 여행을 '하고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왜 여행을 하고 싶어할까. 김영하 작가는 이에 대한 답을 이 책을 통해 펼쳐 놓는다. 기본적으로 어느 나라를 다녀오고 무엇을 느끼는지를 적은 여행기와는 출발이 다른 여행기다.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모든 여행기는 예측이 불가하다. 예측이 가능하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일상이다. 100% 계획대로 지나간 여행이라 하더라도 그 과정 사이사이는 불확실과 빗나감이 자리잡고 있고 그 예측불가함이야 말로 여행의 이유다.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사람과 자본이 알짜배기만 훑고 나온 여행기와 TV프로그램을 보면 될 일이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모두 '방구석 여행자'이다. 우리는 여행 에세이나 여행 다큐멘터리 등을 보고 어떤 여행지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그곳을 다녀온다. 그러나 일인칭으로 수행한 이 '진짜' 여행은 시간과 비용의 문제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그곳을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우리는 또다른 여행서나 TV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이미 다녀온 곳을 그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읽거나 보게 된다. 나와는 다른 그들의 느낌과 경험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되어 내 여행의 경험에 얹힌다. 여행의 경험은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발효한다. 한 층에 간접경험을 쌓고 그 위에 직접경험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다른 누군가의 간접경험을 추가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
독특한 시각이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직접 경험하는 것을 가장 큰 가치에 두고 있다. 그런데 김영하 작가는 조금 다른 논리를 펼치는
데, '아무리 니가 용을 써봐야 일부밖에 볼 수 없다. 그러니 너무 무리하지 말아라. 다녀왔다는 느낌 하나면 충분하다. 부족한 부분들은 수많은 방송과 책으로 충당할 일이다. 오히려 거기서 받은 느낌과 감정을 보듬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테면 김영하 작가는 책을 쓰기 위해 상하이로 향하다 비자 문제로 입국에 실패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책을 완성하는데 그렇다면 여행의 목적은 사실상 달성한 것이다. 작가는 이 부분 조차도 어쩌면 여행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목적한 바를 정확히 이루지는 못했지만 집을 더나 고생을 하고 원래의 목적과 조금 다른 것을 성취했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는 또다른 이유는 익명성을 가지기 위해서다. 인간은 사회성의 동물인지라 누구나 자신을 이해받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반대로 숨고 싶은 욕망도 있다. 특히나 요즘같은 사회에서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고 또 의무와 권리를 가진 시민이 아닌 삶을 잠시나마 가지고 싶어한다.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 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여행과 이민이 다른 점이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곳이 일상이 된다면 다시 다른 곳을 여행하고 싶어할 것이다.
이렇게 여행의 이유를 알고 다른 관점을 보게 되니 여행 계획에서 많은 것을 내려 놓게 된다. 이왕 가는 것이니 모든 곳을 다 가보고, 먹어야 하는 걸 다 먹어야 하는 바쁜 여행보다 순간 순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여유롭게, 조금 더 자유롭게, 조금 더 다르게 준비한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일상을 여행처럼 만들수도 있을 듯 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예측 불가성을 인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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