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읽은 그럴싸 한 판타지. 어차피 한국의 판타지 소설이란 대부분 톨킨의 세계관을 베끼는 팬픽에 다름아니다. 그렇지 않고 작가만의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이영도 작가 같은 이가 나오기도 하지만 가뭄에 콩나듯이고 대부분은 드워프-엘프-인간-드래곤으로 이어지는 종족관을 그대로 들고 나오게 된다. 여기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마법과 써클의 개념까지 붙으면 한국의 판타지 소설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대마법사>는 여기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꽤나 박진감 넘치고 독특한 시각을 제시하는데 전체 흐름을 꿰뚫고 있는게 '잔인한 복수'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내 루미너스의 복수를 다짐했을 때 엘 하자의 금기를 깨는 조건으로 드래곤 로드 칼세이론은 나에게 하나의 저주를 걸었다. 망각하되 망각하지 않는 저주를. 나는 지금도 꿈 속에서도 그녀를 떠올리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그녀의 마지막 말, 그녀의 표정, 내 손에 닿았을 때의 부드러움, 이 모든 것들은 내 몸속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지만 결코 나는 그녀의 얼굴이나 모습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이 내가 받은 저주다."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은 중2병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허세를 뺄 수가 없는데 이는 작가층이나 독자층이 어린 것도 있고 그들의 독서 이유가 대리만족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 동화가 있듯이 허세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나름의 대리만족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독자, 작가 연령층이 어리다보니 나름의 수위 조절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대마법사>는 그걸 뛰어넘으면서 개성을 만들어냈다. 중2병의 허세가득한 복수를 주제로 하지만 그 과정을 최대한 잔인하게 만드면서 자기만의 세계관을 만들어낸것. 복수를 위해 무고한 민간인들과 어린아이까지 학살해버리는 대마법사의 모습은 상당히 괴리감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가장 화려한 권좌에 앉아 있던 아라미엘의 몸이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대지에 부딪힌 그녀의 몸은 두터운 대지를 뚫고 한없이 흘러내려 가장 깊은 마계로 흘러들었다. 아름답게 그녀를 빛내던 광채는 사라지고 추악하게 일그러진 몸은 검붉은 색으로 변해 버렸다. 전신의 명부에서 그녀의 이름이 지워지고 마신 랑그라보다의 권속인 일곱군주 중 첫번째인 아가엘이 되었다.
후반부로 가면서 모자란 세계관을 만들어내느라 난잡해져 버렸고 과도하게 늘어지는 점도 필력의 약함을 드러냈다. 2부까지는 가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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