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도쿄기담집] 하루키의 지옥들

슬슬살살 2020. 4. 22. 21:59

제목으로 봐서는 무서운 괴담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 않다. 아무리, 하루키가 시시한 괴담 따위를 쓸까보냐.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우연의 연속이 빚어낸 사건처럼 신기하긴 하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하루키의 손을 빌었기에 당연히 도시적이고 세련미 넘친다. 그런게 무려 다섯 개다. 


우연이 겹치면서 누나와 화해의 계기를 마련한 게이 피아노 조율사(우연한 여행자), 서핑 중 상어에게 물려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피아니스트 이야기(하나레이 만), 26층과 24층 사이에서 실종되었다 돌아온 남자 이야기(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석 이야기를 쓰고 있는 소설가 이야기(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마지막으로 이름을 훔쳐간 원숭이 이야기(시나가와 원숭이)까지, 무엇하나 독특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느 쪽의 경우든 정말이지 내용으로 봐서는 하잘것 없는 시시한 일들이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내 인생의 흐름에 변화가 생겨난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어떤 기묘한 일에 감탄할 뿐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구나, 하고. ('우연한 여행자' 中)


그렇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하잘것 없는 시시한 일들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의외고 기묘한 것들이 많고 그것들을 시시하게 여기지 않으면 감탄할 수 있다 말한다. 기묘한 일들이 실제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바람은 의지를 갖고 있어. 우리는 평소에 그런 걸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살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걸 깨우치게 되는거야. 바람은 하나의 의도를 가지고 당신을 감사고, 당신을 뒤흔들고 있어. 바람은 당신 내면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 바람뿐만이 아니야. 모든 게 다 그래. 돌도 그 중 하나인거야. 그것들은 우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지. 하나에서 열까지. 어느 때가 디면 우리는 그걸 깨닫게 되지. 우리는 그런 것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어.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살아남고, 그리고 깊이를 더해가게 되는거야."('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中)


다섯가지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 하루키의 분신들이다. 서핑을 즐기고 재즈와 피아노를 좋아하는 작가, 가끔씩은 이름을 까먹거나 시간의 쫒김과 같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가 하루키가 아니면 누굴까. 그런 점에서, 하루키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작은 지옥들을 하나하나 여기에 펼쳐 놓았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실린 시나가와 원숭이가 이름과 함게 걱정, 단점을 함께 가져가 주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