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연금술사] 마크툽, 책임감 없는 자기 회피

슬슬살살 2020. 4. 12. 10:04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에 희화화 되기는 했지만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은 한 때 상태 메세지로 가장 많이 쓰였던 말이기도 하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면, 혹은 구체적 목표를 세우면 꿈에 가까워진다는 성공학의 가이드라인보다 훨씬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색감이 들어가 있어서 젊은 층에게 공감을 얻었던 이 말은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에서 나오는 말이다. 

산티아고는 꿈을 찾아 피라미드로 향한다. 사랑도 부도 포기하고 피라미드를 보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이기적인 생각이다.


사실 <연금술사>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철학적인 명상서에 가깝다. 꿈을 찾아 여행하는 산티아고의 발자취를 따르기는 하지만 매 장면, 매 에피소드는 극적이라기보다는 교육적이다. 만화로 따지자면 <먼나라, 이웃나라>라고 하면 이해가 될거다. 이런 류의 책이 그렇듯 자칫하면 교조적이 될 수도 있었는데 <연금술사>는 훨씬 덤덤하게, 말랑하게 쓰여졌다. 이게 파울로 코엘료의 재능이다. 


인생을 살맛나게 해 주는건 꿈이 실현되리라고 믿는 것이지.


코엘료는 인생이 꿈을 실현 될 것이라고 믿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말한다. 여기에서 <연금술사>가 운명론적인 메세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여기에 조금 더해 '온 힘을 다해 바라라'는 선언적인 조언이 더해져 단순한 결정론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책을 전반적으로 감싸고 있는 신비주의에 기반한 종교적인 조언은 자칫 읽는이에게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다. 


마크툽, 소설 전체에 걸쳐 다뤄지는 중요한 단어다. '신에 의해 미리 쓰여져 있다'라는 뜻으로 '신의 뜻대로'로 번역이 되는 아랍어다. 파울로 코엘료가 이후에 <마크툽>이라는 책을 낸 것으로 보면 작가의 가치관을 지배하는 말임이 분명하다. 그게 진실이건 아니건, 신에 의해 모든 것이 쓰여 있는 삶이라는  건 너무 재미 없을 것 같다. 자고로 인간이란 꿈을 실현하는 것 뿐 아니라 실현하지 못함에서도 삶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인간 역시 다른 생명처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의미이다. 우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이유는 온 우주가 돕는다라는 말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그런 마인드를 무책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