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바디: 우리 몸 안내서] 우리 몸에 대해 아는 건 삶을 경외하는 것

슬슬살살 2020. 4. 21. 21:30

기존의 빌 브라이늣의 문법을 생각하고 읽었다가는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곳에서 시작해 온갖 잡학 다식한 정보들을 오밀 조밀하게 늘어 놓는다. 특유의 시니컬한 논평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빌 아저씨 답지 않게 지루하다. 아무래도 수많은 의학 용어들, 익숙치 않은 의사들의 등장, 똑바로 머리속에 그려지지 않는 몸 안의 구조들이 이 책을 <거의 모든 것들의 역사>보다 딱딱하게 만들었다. 물론, 의학 교양서로는 가장 대중적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미생물을 항생제에 더 노출시킬수록 미생물이 내성을 갖추게 될 기회도 더 많아진다. 아무튼 항생제를 투여하고 나면 가장 내성이 강한 미생물만이 몸에 남는다. 다양한 세균들을 한꺼번에 공격함으로써, 우리는 많은 방어활동을 자극한다. 동시에 불필요한 피해까지 일으킨다. 항생제는 수류탄만큼 무차별적이다. 나쁜 미생물뿐만 아니라, 좋은 미생물까지 싹 없앤다. 좋은 미생물 중 일부는 결코 돌아오지 않고 영구적으로 손실된다는 증거가 점점 늘고 있다. 

항생제와 내성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면 무섭다'는 정도의 상식은 일반적이지만 그게 왜 그런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 빌 브라이슨은 친구한테 말하듯이 설명한다. 수류탄이란다, 항생제는.  

1945년에는 페니실린 총 4만 단위를 투여하면 전형적인 폐렴알균성 폐렴을 치료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내성 증가 때문에 하루에 2천만 단위 이상을 여러날 동안 투여해야만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은 페니실린이 전혀 듣지 않는 질병들도 있다. 그래서 감염병의 사망률은 점점 증가해왔으며, 약 40년 전의 수준으로 돌아가 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의학이 발달했음에도 항생제의 효과가 40년 전이 되어버렸단다. 사람의 몸뚱아리가 적응해 버리는 바람에... 섬뜩하다. 항생제 내성의 무서움이라는 걸 이렇게 직접적으로 느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대로 새로운 혁신을 이뤄내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내가 늙었을 때 더 고통스러운건 아닐까. 코로나 때문에 바뀐 세상이라 더 무섭다.  

우리 뇌의 가장 신기하면서 특이한 점은 대체로 그런 뇌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음악을 작곡하고 철학에 빠질 수 있는 능력싸지는 필요하지 않다. 사실상 그저 네발 동물보다 조금 더 뛰어나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진정으로 필요하지 않은 정신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일까. 

'뇌'항목에 이르러서는 시크함이 극에 달한다. 우리는 몸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겨우 동물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하다는 독설을 내뱉는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인생을 겸허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메세지가 담겨있기도 하다. 

빌 브라이슨은 이 책을 통해 의학의 진보를 위해서 천재적으로, 혹은 바보같이 희생한 모든 의학자, 과학자, 괴짜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인류는 어떤 면에서든 조금씩 진화를 하고 있다. 비록 모든 질병을 정복한다거나 영생을 얻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으로 그걸 알아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ps. 예전부터 느끼던 건데 한국에 그렇게 팬이 많은데도 빌 브라이슨은 한국을 잘 언급하지 않는다. 731 부대까지 다룬 그의 조사력을 보면 결코 모르는 건 아닐텐데... 팬으로서 조금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