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창대하고 흥미롭다. 플린트 시티라는 작은 도시에서 잔인한 성폭력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도 열 살짜리 흑인 소년에게. 범인으로 테리라는 모범 시민이 지목되고 그는 코치로 활동하는 야구팀의 결승전에서 수만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체포 당한다. 검사와 경찰이 이렇게 무리하게 체포한 이유는 역대급으로 잔인한 이번 사건에서 나름의 퍼포먼스가 필요했고, 모든 증거가 명백하게 캐빈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목격자, DNA, 지문까지...그러나 체포된 테리에게 명확한 알리바이-다른 도시에서 세미나에 참석했던게 방송에까지 잡혔다-가 드러나고 사건은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테리는 죽은 소년의 형에게 암살 당하고 사건은 그냥 묻히는가 했는데...
선한 의지를 가진 경찰 랠프와 테리의 변호사 하위는 이 사건을 끝까지 추적하기로 마음먹는다. 랠프는 무리한 체포에 대한 속죄로, 하위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사람이 동시에 두군데 있을 수 없다라는 물리법칙이 깨어진 이유는 끝가지 독자를 궁금하게 만든다. 하지만 후반부에 접어 들면서 소설은 평범한 헐리우드 영화로 바뀌고 실망을 안긴다. 설마 도플갱어는 아니겠지란 생각이 진실로 밝혀지면서 독자는 혼란스럽다.
"히스 홈즈가 두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믿어요. 다른 자의 소행이에요. '이방인(Outsider)'이요."
물론 이 시점에서 소설은 새 등장인물, 매력적인 홀리에게 중심축을 훌륭하게 이동시킨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의문 '어떻게 된 일일까?'의 어이없는 마무리가 '이 멋진 여자'로 시점이동하는건 아쉽기 그지없다. 이렇게 쉽게 아웃사이더를 등장시키다니.. 물론, 이 소설이 다른 작품 '빌 호지스' 3부작의 연작이라는 걸 아는 팬들이라면 다르겠지만...
랠프는 책꽃이 앞으로 다가가 까치발을 하고 비닐로 싸인 책을 꺼냈다. 손바닥으로 양 옆을 붙들었다. 옛날의 운구 행렬을 촬영한 적갈색 사진이 표지였다. 하나같이 낡은 모자를 쓰고 권총집을 찬 카우보이 여섯 명이 나무 관을 먼지 자욱한 묘지로 옮기고 있었다.
또 스티븐 킹의 펜 끝이 많이 무뎌졌다는게 느껴진다. 수많은 암시와 은유가 작품 곳곳에 포진해 있지만 '이거 암시야, 세련됐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카우보이들이 옮기는 관 사진이라니, 누가봐도 범인으로 몰린 테리를 가리키고 있는게 아닌가. 이런 식의 묘사가 너무도 많아서 나중에는 좀 질린다.
아웃사이더의 정체가 속 시원하게 풀리지 않고, 서부극 같은 총격전으로 마무리되는게 영 미적찌근하다. 흥미 넘치는 시작에 비해 아쉬운 마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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