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2020년 한국 극장가가 간만에 숨통을 틔었다. 전작의 놀라운 성공에 힘입어 확장된 세계관을 가지고 돌아온 좀비영화 <반도> 덕분이다. 개봉 전부터 기대감을 모았던 이 영화는 아쉽게도 전작의 아성을 뛰어넘는데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렇게 참혹할정도로 못만든 영화일까? <부산행>과 별개로 바라본다면 이 역시도 다른 방식의 한국식 좀비영화의 한 축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보통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절대적인 악(惡)이자 대적자로 나온다. 간혹 악역의 인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혼자 살기 위한 이기적인 인간이거나,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어낸 기업가 또는 악당 과학자다. <반도>에서 악인은 조금 다르다. 아마도 4년 전 부산행 사태에서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을 631부대는 무참한 한반도에 갇혀 희망을 잃어버리고 좀비 콜로세움을 운영하는 악당집단으로 변했다.
"제가 살던 세상도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또 난민으로 전락한 한민족의 운명도 안타깝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하루아침에 천덕꺼리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홍콩, 일본 등지에 소수의 한국인만이 살아남은 듯 하다. 어쨌거나 탈출에 성공한 한정석(강동원)이 매형과 함께 달러차량을 회수하러 한반도로 돌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익숙한 곳이 완전히 멸망해버린 모습을 보는 건 헐리웃의 아포칼립스보다 충격적이다. 또, 그 와중에 살아남은 이들을 보면서 인간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좀비 서바이벌에서 '존버'전략을 보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체험이다. 인간은 어떻게는 살아가는구나.
이 영화에서 좀비는 부차적이다. 오히려 직접적인 적은 좀비를 이용해 얄팍한 권력을 유지해 나가고 인간성을 상실한 군인들이 좀비보다 훨씬 두렵다. 그리고 평범한 주부가 4년만에 여전사가 된 배경을 상상해보면서 지옥 같은 삶을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반도>는 빠진 부분을 상상할 때 더 두렵고 잔인한 영화다. <반도>의 감상 팁!,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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