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버닝] 사라진 귤은 누가 먹었을까

슬슬살살 2020. 8. 9. 11:11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꽤나 난해하다. 사회의 밑자락에서 살고 있는 종수(유아인)와 해미(전종서)의 의식구조와, 상류층인 벤(스티브 연)이 이를 파괴하는 모습을 담았다. 단순하게 보면 프롤레탈리아와 부르주와의 대립과 파괴, 혁명을 그리는 일반적인 메타포로 볼 수 있겠지만 이창동 감독은 이를 훨씬 복잡한 구조로 가져간다. 

"여기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입에 침이 나오면서 정말로 맛있다고 덧붙인다.(벤이라면 물론 그 방법을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벤은 주위에 늘 귤이 있어서 원할 때면 언제든 집어먹으면 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마음의 돌도 직접 실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 이동진,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영화는 부의 유무로 계층을 가르지 않는다. 종수는 가난한 집의 자식에 불과하지만 그리 주눅드는 모습을 보이질 않는다. 벤 역시 부자임에도 그들과의 만남을 꺼리지 않는다. 꺼림찍함은 벤이 낮은 계급의 여인의 말에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 종수에게 고백했듯이 비닐하우스를 태우기 직전의 모습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버리는 아이를 떠오르게 한다. 여기에는 부와 가난이 아니라 관계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판단 기준인 듯 하다. 아무리 없는 귤을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없는 귤이 실제로 생기지는 않는다. 그걸 알고 있는 벤, 귤을 바라는 해미, 귤이 없는걸 잘 알고 있는 종수는 죽이고, 사라지고, 복수한다. 


영화는 기괴하지 않지만 묘한 거부감과 알 수 없는 기분 나쁨을 주는데 배우들의 연기도 한 몫한다. 유아인, 전종서, 스티브 연 모두 나름대로 연기를 꽤 하는 이들인데 <버닝>에서는 연극을 보는 것처럼 이질적인 연기를 보인다. 이는 이 영화가 가지는 비틀린 뉘앙스를 보이는데 큰 기여를 한다. 충격적이긴 하지만 고도의 집중과 생각이 좀 피곤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