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예상을 뒤엎었다. 스릴러물인줄 알았지만 히어로물이었던 <언브레이커블>, 또다시 스릴러물인 줄 알았지만 <언브레이커블>의 후속작이었던 <23 아이덴티티>, 결말이겠거니 예상했지만 세계관을 한껏 확장시키면서 새로운 시작의 도래를 알리는 <글래스>까지.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히어로 3부작은 하나의 완결이 아니라 스핀오프 3부작이라고 하는게 맞을 듯 하다. 극찬은 여기까지 하고, <글래스>는 전작들보다는 정적이다. 그동안 폭삭 늙어버린 브루스 윌리스는 둘째로 하더라도 대규모의 전투씬이라던지 하는게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전작들 역시 말이 히어로물이지 호쾌한 액션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그리 아쉽지는 않다. 오히려 치열하게 전개되는 두뇌 싸움이 <글래스>의 매력에 가깝다. 영화 제목도 <글래스>-유리-인건 사무엘 잭슨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걸 대놓고 얘기해 준다.
사실상 히어로들을 1만년동안 관리해 온 비밀 조직과 세 히어로(부서지지 않는 자, 뛰어난 두뇌를 가진 자, 그리고 비스트)가 부딪힌다. 히어로가 돌아다닐 때에는 그다니 내버려 두지 않았지만 비스트라는 빌런을 등장시키게 되자 이 비밀 조직은 이들을 회유하기 시작한다. 히어로라는 건 존재하지 않고 이들의 이상징후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너희들은 평범한 사람인데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뿐이라고". 회유되기 시작한 비스트와 브루스 윌리스를 다시 제자리로 돌린 건 역시나 천재 <글래스>다. 정신나간 표정으로 조직의 주의를 흩트려 놓은 뒤 거대한 복수를 계획한다.
조직이 두려워하는 건 히어로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 히어로로 각성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반대의 빌런 역시 증가한다. 인류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히어로는 통제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하지만 글래스 박사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진정한 히어로 시대를 열고 싶었던 거다. 이 과정에서 비스트와 브루스 윌리스가 희생당하지만 세상은 한 단계 진화를 하게 된다. 어쩌면 X맨의 시작이 여기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리미티드 에디션이 아니라 비기닝이었던 것.
메세지 뿐 아니라 영화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볼만한데, 과거 비스트가 탄생한 배경에 글래스가 일으킨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이나 영화 말미, 글래스 박사가 조직에 빅엿을 먹이는 장면들은 알면서도 통쾌하다. 스릴러로 시작해서 장르가 다른 어떤 것으로 끝나는 샤말란 식의 전개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실제로 뒤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히어로의 등장이 세상에 풀리게 된다. 세계는 히어로 세계관으로 한 단계 진화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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