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당한 딸의 범인을 찾지 못하는 경찰에 대한 분노를 세 개의 광고판에 그들을 비난하는 광고를 게시함으로써 여실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경찰은 그녀를 회유하고, 협박하고, 사과한다. 여느 스릴러물이라면 이 광고를 건 여성은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나서리라. 그리고 경찰이 이 사건에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위험에 처하거나 그들을 처단할거다. 그런 면에서 딸을 죽인 범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는 스릴러물이라 볼 수 없다.
포털의 영화정보에서 <쓰리 빌보드>의 장르 분류는 코미디/드라마/범죄라고 되어 있다. 원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탓일까. 코미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저게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찰들이 막무가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 시민을 폭행하고, 술에 쩔어있는 경찰의 모습은 아무리 영화라지만 상상하기 힘들다.
이 영화는 화해에 대한 얘기다. 딸을 잃은 엄마의 마음이 오죽할 것인가. 그녀, 밀드레드는 범인을 찾기 위해 존경받는 경찰서장을 모욕하지만 서장이 자살하면서 죄인으로 몰린다. 도대체 그녀가 뭘 잘못했다고. 서장은 그녀를 이해하고 용서했으나, 사람들은 그녀를 차갑게 바라본다. 서장을 존경하는 경찰관 딕슨은 그녀를 도운 광고업자를 폭행한다. 그러나 서장의 죽음과 편지로 잘못을 깨닫고 그녀에게 용서를 구한다.
밀드레드와 딕슨은 잘못 복수한 자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절실히 깨닫고서 생각을 고쳐먹고 다음 행동에 나선다는 점이다. 그들의 깨달음은 모두 외부로부터 온다. "복수는 더 큰 복수를 낳을 뿐"이라는 말은 흔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밀드레드에겐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 이동진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中
영화에서 밀드레드가 범인을 찾거나 복수에 성공한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의도와 관계 없이 분노의 방향이 잘못 될 수 있다는 것과 그 잘못된 분노를 이해하는 차원높은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복수를 잊고 용서하라'는 따위의 도덕적인 결론을 내지 않는다. 그저 분노를 표출하고 당하고 용서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잔인한 과정을 덤덤하게 그려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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