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지구상의 모든 여자들이 잠이 든다. 황당하기는 하지만 상상해보면 좀비 아포칼립스 못지 않게 끔찍한 상황이다.
"우리 시간으로 7시에서 8시 사이, 태평양 표준시로 4시에서 5시 사이에 시작됐어요. 그래서 서쪽 지역에 있는 여자들이 먼저 심하게 타격을 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우린 하루 남아있는 셈이죠. 하루치 기름이 남아있는 거예요."
<눈 먼 자들의 도시>처럼 전 지구적인 초자연 현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유따위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 여자(간난아이부터 할머니까지)가 잠이 들게 되면 고치 처럼 가는 실타래가 몸 주위를 둘러 싼다. 이걸 훼손하면 전력을 다해 주변을 공격한다. 마치 좀비처럼. 이 상황이 엄청 잔인한 것이 대부분 이 고치를 훼손하는 건 가까운 남자들이 대부분인데 모두 끝이 좋지 않다. 손가락이 잘리거나 눈이 멀게 된다. 목을 물어 뜯겨 죽음에 이르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
이 상황에 이르러 여자들은 선택을 한다. 마약과 각성제를 통해 버틸 수 있는 때까지 버티거나 일찌감치 포기하거나. 남자들도 선택을 한다. 연구를 통해 비밀을 밝혀내거나 유언비어를 퍼트려 여자고치들을 태워버리거나. 어처구니 없지만 이런 말도 안되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남자들이 꽤 있다.
사람들이 최고의 상황을 기대하는 한편 최악이 상황을 예상한다는 것을 알았다. 겁에 질린 세상에서는 가짜 뉴스가 왕이었다.
고치에 둘러쌓인 여성들 중 둘링에 살고 있는 이들은 다른 세계로 옮겨진다. 아마도 지구의 몇백년 후일 것으로 집작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공동체를 만들고 마을을 번성 시킨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자기 몸에 문제가 생기면 사라지기는 하지만 나름 행복하게 살아나간다.
이 세상은 남자들 위주로 돌아가던 예전 세상에 비해 훨씬 좋았다. 여기에서는 아무도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아무도 나나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아무도 그들을 2등 시민 취급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여자아이가 해가 진 뒤에도 아무 걱정 없이 혼자 집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여자아이의 재능이 골반과 가슴과 함께 자랄 수 있었다. 그걸 꺾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나는 그걸 알지 못했고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둘링의 여자들만이 마을을 꾸린 이유는 한가지다. 그들이 전 세계의 여성을 대표하며 그들이 낙원에서 집으로 돌아갈 건지를 선택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남기를 원한다면 전세계의 여자들이 낙원으로 건너오게 되고 남자들과는 영원히 바이바이다.
이 소설은 일종의 페미니즘 소설이다. 스마트하고 합리적인 남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많지 않고 대부분은 아내를 학대하거나 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에서 남자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일을 망치고 전쟁을 일으키며 세상을 파괴한다. 반면 여자들은 무언가를 창조하고 사려깊고 돌보는 자로 나타난다. 너무 극단적인 대립관계라 쉽사리 동조하기 어렵다. 그리고 많은 등장인물과 복잡한 관계도가 몰입도를 떨어트린다. 거기에다 4~5가지의 설정오류까지 있어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하긴 어려울 듯 하다. 스티븐 킹도 늙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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