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페스트] 붕괴되지 않는 사람들

슬슬살살 2020. 10. 18. 11:21

시대가 시대인것인지 2020년 하반기에 가장 인기 있는 전자책은 트렌디한 로맨스나 S/F도 아니고 해외 석학의 인문학도 아닌 80년 전에 출판 된 소설, <페스트>다. 프랑스의 한 작은 도시에서 페스트가 발생한다는 설정을 가진 이 소설은 요즘식으로 얘기하면 재난소설에 해당한다. 


해서 재앙이 발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계속 사업을 했고 여행을 준비했으며, 각자 나름의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미래, 이동, 협상 등을 모조리 앗아가 버리는 페스트를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유롭다고 생각해 왔지만, 재앙이 있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장르소설의 원형 같은 이 소설은 팬데믹을 맞닥뜨린 인간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협력하고 이겨내는지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오랑시에 처음 페스트가 발생하고 도시가 봉쇄됐을 때 사람들은 혼란 스러웠다. 우리도 이번 코로나를 통해 격리와 통제를 겪은 바 있지만 완전 봉쇄라는 게 어떤 의미일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페스트>는 무려 80년 전임에도 사회와 분리된다는 것이 시민들에게 어떤 정신적 타격을 주는지를 실감나게 묘사한다.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페스트는 오랑 시를 자기발 아래 굴종시켰다. 

랑베르는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자신이 믿어 온 것을 계속 믿고 있지만, 그래도 이곳을 떠난다면 부끄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두고 온 아내를 사랑라기가 거북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리외는 몸을 곧추세우고 앉아 단호한 목소리로 그것은 어리석다, 행복을 우선시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울 수 있는 일입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폭동과 물건 사재기, 소요와 탈출, 죽음과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부정적인 현상이 배경이지만 기도와 신뢰, 희생과 헌신, 인내와 사랑, 인류애를 잊지 않는 몇몇 인물들이 한켠에서 빛나기도 한다.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페스트가 물러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절망적으로 주저앉아 있지 않음으로서 인간이 인간 다울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이야기다. 분명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인간은 질병에 무릎꿇는다. 그러나 의사 리외는 절망속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치료를 끈덕지게 이어나가고, 오랑 시에 출장을 왔을 뿐인 기자 랑베르는 혼자만 살아나가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탈출을 포기한 채 도시와 환자를 위해 봉사를 계속한다.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 만큼은 말하기 위해서였다. 


카뮈가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이를 극복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내 독자들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려고 이 책을 쓴게 아니다.  페스트는 하나의 상징이다. 인류를 분열시키고 악하게 만드는 그것. 글이 쓰여진 시대적인 배경을 생각해 보면 페스트는 나치즘이자 파시즘, 시민 사회에서 퍼져나가는 악성 이념을 뜻한다. 인류는 2차대전을 통해 엄청난 희생을 치루지만 수많은 리외와 랑베르가 등장, 인류를 절망에서 구원한다. 인간은 결코 붕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