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에 대항하기에 늘 역부족이었지만 그렇기에 왠지 모를 불쌍함을 가지고 있는 D.C에서 그나마 매력적인 캐릭터를 꼽으라면 단연 원더우먼이 아닐런지. 마블이 트렌디한 히어로들을 줄기차게 내놓는데 반해 D.C의 고전 영웅들은 아무리 돈을 들여도 쫄쫄이가 멋져지지 않는데 반해 원더우먼의 유치한 유니폼은 시간이 갈수록 레트로한 매력을 더한다. 이건 제작진의 노력도 있겠지만 갤 가돗이 너무나도 캐릭터에 착붙이기 때문이 아닐런지. 커다란 키에 딱 벌어진 어깨를 가지고 있는 갤 가돗은 원더우먼으로 변신하기 전에는 유명한 패션 모델처럼 옷을 입고 있는데 이게 무척이나 멋있다. 그리고 액션 역시 슈퍼맨이나 배트맨보다는 정확하게 자신만의 기술들(올가미라던지 머리띠 공격이라던지)을 가지고 있어서 늘 등장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럼에도, 1984년의 원더우먼을 소환한 이번 작품은 절반밖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소원을 들어주는 보석의 등장과 인간으로서의 욕망으로 죽은 연인을 되살려 낸 다이애나와 욕망 그 자체인 석유왕 로스를 대립시킨 것 까지는 무난했지만 전작의 전장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액션에 비해서 작아진 스케일은 아쉬웠다. 원더우먼의 인간적이고 여성적인 매력을 부각시키려다보니 팬들이 좋아하는 걸 어쩔수 없이 줄여버렸다는 느낌이 강하다. 액션의 정점에 있어야 할 히어로물이 이렇게 감상적이 되어버린 건 무엇 때문일런지.
욕망을 먹고 사는 괴물은 요즘 넷플릭스를 씹어먹고 있는 <스위트홈>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고 <배트맨> 시리즈의 '아이비'를 연상시키는 바바라 역시 매력적인 역할을 소화하기에는 나이가 발목을 잡는다. 원더우먼의 최종진화 형태의 유니폼 역시 멋짐보다는 불편하고 어생해 보인다. <원더우먼 1984>는 복고풍의 멋진 장면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력적이지만 그 내용만으로 들여다 봐서는 솔직히 아쉬움이 더 큰 영화다. 그럼에도 갤 가돗의 멋짐은 결코 뒤쳐지지 않기 때문에 다음번에도, 또 다음번에도 찾아볼 것은 기정 사실이다. 배우에 의존하는 것도 이정도라면 안정적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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