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괜찮은 소설이다.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우연, 신비로운 운명론적 설정, 소년의 성장, 모험과 극복 그리고 우정에 이르기까지 청소년 소설이 가지고 있어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고조 할아버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바람에 대대로 지독하게 운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스탠리는 운동화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소년원 캠프에 갇혀서 매일 구덩이를 판다. 단순히 벌이라기에는 뭔가 목적이 있는 듯한 구덩이 파기는 사실상 소년 교화를 명분으로 한 보물찾기였다. 스탠리는 몇가지 사건과 함께 캠프를 탈출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보물을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저주를 풀어낸다. 모두 스탠리가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면서 스탠리는 세상에서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로가 주차된 차 위에 운동화를 올려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차가 고가도로를 지나는 바람에 운동화가 자기 머리 위에 떨어진 것도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운동화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스탠리는 그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건 분명 운명이었다.
짧은 분량에도 꽤나 많은 플롯을 간결하고 꼬이지 않게 집어 넣었고 뭐하나 그냥 쓰여진 문장이 없다. '총이 등장했으면 총알이 발사되어야 한다'는 대명제를 충실하게 지켰다. 문장은 짧고 시원시원해서 편안하게 읽히며 끝까지 긴장감을 탱탱하게 끌고가는 명작이다.
'열수레의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인디아나 존스 대신 따뜻한 고고학자는 어떨까? (0) | 2021.05.01 |
---|---|
[아주 오래된 농담] 나쁜 관습에 대하여 (0) | 2021.04.23 |
[엘리트 세습]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0) | 2021.03.07 |
[좀머 씨 이야기]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0) | 2021.02.15 |
[대도] 인생을 낭비한 죄 (0) | 2021.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