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헝가리의 영화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인지 헝가리의 모습이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게 꽤 색다르다. 이 영화는 두 남녀가 우연찮게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일반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는데 그 계기가 무척이나 색다르다. 먼저 남자주인공인 안드레는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일터인 도축장에서 사고를 당한 것 같다. 나름 회사에서는 고위직이지만 작은 공장의 사장 정도라 소탈하고 추례한 이미지다. 사고 때문에 이혼을 한 것으로 보이며 회사 외에는 집에서 TV를 보면서 면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남자. 그가 일하는 도축장에 품질관리원으로 르벨리라는 여성이 배정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여성은 도축된 고기에 등급을 매기는 일을 하는데 아마 공장에서 속이지 못하도록 하는 일인 것 같다. 특이한 점은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과잉기억 증후군을 가지고 있으며 공감능력이 제로에 가까워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 못한다. 집에서 인형을 가지고 말하는 연습을 거듭하고 큰 결심을 해야 비로소 대화를 할 수 있지만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준비된 멘트를 읽어 버리는데 그친다. 이렇게 두 남녀는 신체적, 정신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이 두 남녀는 어느날부터 같은 꿈을 꾼다. 아름다운 호수가 딸린 숲에서 그들은 사슴이 되어 매일 사랑을 나누고 그 사실을 알게된 그 순간부터 둘은 정열적인 사랑에 빠진다.
소에 대한 연민과 사슴에 대한 동경 사이, 도축장에서 일하면서 시냇가 꿈을 꾸는 두 사람은 어떻게 전력을 다해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이동진 평론가)
그들이 사랑에 빠지면서 결핍은 사라지지만 여러가지 환경과 오해가 쌓이면서 둘 사이는 멀어진다. 절망에 빠진 여자가 자살하기 직전 남자에게서 반성의 전화가 걸려오고 흐르는 피를 닦으면서 여성은 그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급격하게 가까워진 둘, 하지만 같이 웃으며 식사를 할 때 여성은 문득 빵조각을 흘리고 먹는 남자에게서 불쾌감과 이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
사랑은 어쩌면 이상일 때 아름답고 정작 현실이 되었을때는 잔인한 면을 가지고 있다. 소가 도축당하는 현실 속에서 숲속을 노니는 사슴이 그저 꿈인 것처럼. 극 초반 소가 도축당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차갑고 날카로우며 냉정하다. 그게 현실속의 사랑이라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세계에 당도한 빛은 이제 사라졌고, 관계에 동력을 불어 넣었던 꿈 역시 끝났다. 하지만 육체와 영혼이 온전하게 공유되었던 기억은 아직 선연하다. 그러니 이제 이 아름다운 연인들은 꿈없이 빛 없이, 뚜벅뚜벅 그 길을 계속 걸어가야만 한다. (이동진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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