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짬이 마음껏 독서를 할 수 있을 때 쯤, 내무반에 굴러다니던게 이 인간시장이다. 기억에는 권총찬이 등장하는 1부와 장총찬이 등장하는 2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 다시 읽은 버전은 장총찬으로 통일된 버전이다. 뭔가 사연이 있었겠지. 아무튼 김홍신이라는 작가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 놓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역대 베스트셀러중 하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여러모로 부족한 글이다. 여성을 천시하던 당시의 시대상이야 그렇다지만 소년 탐정소설류와 비슷한 문체와 양판소에 버금가는 단순한 서술은 아무리 쉬운 글을 지향하는 작가의 특징에 비춰봐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글이라기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직설적이고 거칠고 투박하다. 하지만 그 거칠음이 이 소설을 베스트셀러로 올려 놓지 않았을까?
서울을 싹 불질러 버려야 돼. 로마의 황제 네로를 우리는 존경해야 돼. 저런 싸가지 없는 것들이 사는 서울을 왜 여태 그냥 둔거야.
대학교 OT때 병신춤을 추며 서울 '것'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춤거리를 남자다움, 젊은 치기로 바라보는 당시의 가치관이 꽤나 어색하다. 그렇지만 이런 면이야말로 <인간시장>의 정체성을 정확히 드러낸다.
쪽바리에게 나라 팔아먹은 치들도 어른입네 하고 큰 소리치며 잘 처먹고 있죠. 쪽바리들이 우리나라를 아주 먹어 치우려고 가르친 식민지 사관에 빠져 들어가 우리나라 역사를 개판으로 써갈긴, 저 혼자 석학인줄 아는 멍청이들은 해수기침하며 살죠
<인간시장>에서 선과 악은 명확하다. 청산되지 않은 일제시대의 남은 잔재와 이를 이용해 영원히 잘먹고 잘사는 식자층과 당하기만 하는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로 정확히 이분되어 있고 주인공 장총찬은 20세기 홍길동이 되어 이들을 말 그대로 무찌른다.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요소가 자행되지만 정의 앞에서 그런건 남자다움이라는 미명 아래 무시된다. 아마 당시의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거침없이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며 강한 대리만족을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불안했던 시기라는 반증이기도 하고.
대표적인 틀린 말 중에 '자장면'과 '저희 나라'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를 착각해서 저희나라로 부르는 것이 다른 오용보다 유난히 비난을 받는데 나는 이 소설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첫 에피소드가 방송에서 '저희나라'라고 말한 교수를 잡도리하는 장면인데 과하다 싶을정도로 두둘겨 팬다. 아마 이 장면이 두고두고 이어져 지금에 이른게 아닐까 생각된다. 당시 이 소설의 인기가 어느정도였는지 짐작할만 하다.
어느 나라나 사회가 불안정할 때 '홍길동'과 '로빈후드'가 인기를 얻는다. 이 글을 통해 당시 시대를 읽어보면 여자들은 밤에 돌아다니다 나쁜짓을 당해도 끙끙 앓아야 하고 경찰에 기대봐야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시대다. 지금의 중국과 비슷한 느낌이다. 특히, 여성에 대한 안전은 지금의 인도와 비슷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 도대체 우리 부모님들은 어떤 시대를 살았던 걸까. 어쨌든 무술을 잘하는 의로운 남자가 세상을 주유하며 권선징악을 하는 내용은 언제 읽어도 원초적인 쾌감을 주기 마련이고, <인간시장>은 그런 면을 잘 짚어냈다.
하지만 신문연재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나름의 자기검열을 한 흔적도 보이는데 정치인과 군인, 방송계에는 화살이 가지 않는다. 특히 사이비 기자나 PD를 다루는 편에서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변명이 줄줄이 달려있다. 어쩌면 당국이 좋아하는 고발소설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드는데 정작 날카로움의 끝을 적당한 사회부조리를 향하게 해서 낮은자들끼리 싸우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속된말로 때릴 곳을 정해줬다. 작가는 <인간시장>이 팔리지 않는 시대가 오기를 바랬는데 과연 지금은 그런 시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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