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이야, 아직 철이 덜 들었다봐. 나는 좀, 그러니까 뭐라고 말해야 하나. 그냥 좀 무의미한 일을 하고 싶어"
외할머니 손에 큰 민수는 부모의 부재를 빼고는 평범하고 무기력한 삶을 살아왔지만, 급작스러운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무일푼이 되어 거리로 쫒겨난다. 새로운 삶에 적응을 하려 하지만 알량한 생활방식은 그를 온라인 퀴즈쇼로 도피 시킨다. 이른바 삶에 있어서 큰 몰락을 경험했지만 대부분의 주인공이 그렇듯 노력과 고생을 통한 극복이 아니라 무기력한 회피와 무의미한 일상으로 도망친 것이다. 그러나 그 퀴즈쇼 세상 안에서 매력적인 여성 서지원을 만나면서 그의 삶은 바뀔 뻔 한다. 모든것을 갖춘 서지원을 떠나 퀴즈를 통해 검투사가 되는 세상속으로 들어간 민수, 그가 경험한 것들은 진실일까 망상일까.
휴대폰은 매일같이 새 모델이 쏟아져 나오고 커뮤니케이션 기기와 그 속도는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왜 마음속 깊은 방으로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은 이렇게 늘 어려운 것일까? 왜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열어 보이는 일은 여전히 힘든 걸까?
일단, 80년 생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감이 되는 배경들이 많다. 등장하는 수많은 음악, 영화, 당시의 연애방식 등등..<퀴즈쇼>는 성장 소설처럼 시작해서 현대 로맨스를 지나 S/F를 건너 다시 성장으로 끝나는 독특한 소설이다. 장르적인 복잡성을 모두 관통하는 키워드는 고독이다. 주인공은 고독하다. 과거의 민주화 운동 세대와는 다른 자본주의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에서 오는 고독은 마치 고시원과 같다. 바로 옆에 있어도 모르고, 어찌 긴밀한 관계를 맺을라 치면 일방통행이며 상처받는다. 같이 있어도 외로운 시대다. 특히 현대 고독의 가장 큰 특징은 돈이다. 자본은 개인을 고립시키고 의심하게 만들며 스스로를 위축시켜 종국에는 고독의 구렁텅이로 빠트린다. 서지원처럼 풍족한 자는 결코 고독하지 않다는 점에서 퀴즈쇼는 가난한자들의 소설이다. 그러나, 그 고독 속에서도 맺어지는 소소하고 중요한 관계들은 그나마 삶을 풍요롭게 만드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유쾌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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