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이 보여준 놀라운 인내력의 승리

슬슬살살 2021. 8. 19. 14:34

최근 나온 영화 중 가장 핫한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모가디슈다. 류승완 감독과 김윤석, 조인성 라인, 실화 배경, 남북한, 소말리아(실제 촬영은 모로코지만)라는 독특한 배경까지 일단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는 흥행 공식을 완벽하게 충족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아프가니스탄 함락이라는 시대적 이슈까지 중첩되어 더욱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다. 이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절제된 연출을 보여주는데 류승완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액션 파트조차 상당히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영화적 허용 정도로 인식하는 비현실적인 총격신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민간인 신분인 출연자의 설정을 깨뜨리는 그 어떤 액션도 없다. 실제로 남북한의 대사관 직원들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소말리아를 탈출하는 과정 그 어디에서도 살상행위가 일어나지 않는데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당연히 영화적 재미는 반감될 수 있는데 이런 공백은 등장인물들의 강렬한 연기와 균형 있는 장면 배치로 채워진다. 이 영화의 연출은 특정 주인공을 따라가지 않고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식으로 그려지는데 몰입이 깨지지 않는 건 매 상황상황이 극도로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익숙지 않은 소말리아 사람들의 모습, 어린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쏘아대는 총격씬 등은 극도로 공포스럽다. 인종 차별의 이유는 없으나 익숙지 않은 흑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분명 한몫을 한다.

냉전 시기에 남북한이 협력해서 전쟁터를 빠져나오는 이야기 속에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신파가 녹아들 여지도 분명 존재했지만 감독이 이를 극도로 경계한 모습이 곳곳에 남아있다. 안기부 출신의 조인성은 분명 심정적 변화가 있었지만 완전한 개심을 보여주지는 않고 통 큰 결정을 내린 소말리아 대사 김윤석은 무작정 동포애에 호소하지 않는다. 북한 측 인물들 역시 생존이라는 본능적 목표와 돌아갈 북한의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갈등 연출은 기존의 선악구도, 냉전구도 없이도 충분히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덧붙이자면 최근 일어난 아프간 사태를 보면서 영화는 결코 현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다시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