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이게 무슨 영화지 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며 스트레스를 받고, 후반부에 접어들면 무슨 얘기인지 깨닫는다. 이때쯤 되면 관객은 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진 자와 터부의 소재를 대하는 쾌감을 얻는 자 둘로 나뉜다. 첫 등장에서부터 주인공인 마더가 겪는 수난은 이해하기 어려운 스릴러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데 이해 여부와 다르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준다.
밑도 끝도 없는 수난과 이해할 수 없는 해프닝에 자연스럽게 넌더리를 내게 된다. 그건 애러노프스키가 그렇게 볼 수밖에 없도록 영화적 형식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 이동진 평론가
오로지 남편 하나만 바라보는 주인공이지만 점차 밀려드는 방문객들은 이 여인의 스트레스를 극한으로 보내는데 그건 이 방문객들이 예고없이 들이닥쳐 예의없이 머무르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이제 관객은 이 영화가 거대한 비유를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빠른 사람은 첫 방문객의 아들 둘이 일으키는 살인사건(카인과 아벨)에서, 조금 늦어도 마더의 아들을 식인하는 모습(예수의 탄생과 죽음)에서는 이 영화가 기독교 신화를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비유는 촌스러울정도로 명확해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으며 그 외 다른 해석은 불가할 정도다.
그리고 감독은 이런 비유를 통해서 기독교를 가차없이 폄훼한다. 인간은 예고없이 지구에 방문했으며 예의 없이 머물고 있다고.. 그나마 우리를 받아준 절대신은 이를 묵인하지만 정작 이들을 받아준 지구는 병들어가고 고통스러워하며 신의 은총을 받지도 못한다며. 모든 사건은 기독교에서 바라본 인류의 역사를 그대로 답습한다. 카인과 아벨의 살해 이후 수많은 이들이 주인공의 남편(절대신)을 추앙하지만 정작 남편은 이들의 숭배를 달가와 하며 주인공(지구)과의 어떤 중재도 하지 못한다. 이 이기적인 남편은 자신을 향한 사랑만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지구와 심지어 아들까지도 관심의 밖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더욱 충격적인데 지치고 고통받은 그녀의 몸 속에서 사랑을 꺼내 또다른 배우자를 만드는 모습은 '이기적인 신' 에 그친다. 그 신은 인간과 지구 모두 자신을 숭배하기 위해서 절대적인 능력을 사용하며 아주 작은 배려를 베풀 뿐 그 누구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감독은 기독교가 가진 이기성을 이 영화를 통해 신랄하게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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