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데이는 내전이 막 끝난 보스니아에서 활동하는 NGO를 소재로 하고 있다. 무척이나 고귀한 활동이지만 정작 활동가들의 모습은 타성에 젖은 관료를 보는 듯 하다. 아무리 고귀한 목적을 가지고 가더라도 오랜 기간 같은 일들이 주어지면 봉사 역시도 그냥 일이 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우물에 빠진 시체를 건지는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정작 그 물을 먹게 될 주민들의 건강에 관심이 있는 건 신입뿐이다. UN군이 하지 마라면 그냥 안하는 식으로 시니컬하게 대응하는 베테랑 활동가 맘브루와는 대조적이다.
이 영화는 고결한 희생이나 내전에서 희생을 강요받는 인권을 다루지 않는다. 그저 그 안도 아이들은 공을 차고 주민들은 장을 여는 보통의 세상임을 보여 준다. 물론, 자원은 풍족하지 못해서 로프 하나를 구하기 위해 수십킬로를 움직여야 하는데 말이다. 우물에 빠진 시체를 구하려다 로프가 끊어지고 대체품을 구하려 하지만 온갖 사고가 일어난다. 자기와 종교가 다른 이들이라며 로프를 팔지 않기도 하고 내전에 희생당한 부부 목에 있는 로프를 끊어와야 하는 일도 벌어진다. 죽은 소에 숨겨진 부비트랩이 두려워 날을 지새기도 한다. 어렵게 구해 준 공을 아무렇지 않게 팔아치우는 소년까지. 전쟁 속에서 인간적인 감성은 사라지고 극단적인 이기심과 적개감만 남은 듯 하다.
이 영화에는 이상한 낙관이 흐른다. 충격적인 상황 이후 낙심한 소피에게 맘브루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지금 일어나는 일에만 집중해. 지금 이 순간 이에 존재하는 것은 없어. 계속 가는 거야. 그러면 결국 집에 가게 될 거야."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일은 물 흐르듯 진행되며 베테랑 활동가들은 초연함을 넘어서 묘한 낙관을 보인다. 그 어떤 고난도 그들의 평정을 깨트리지는 못할 것 같다.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도저히 살기 어려울 것 같은 이 곳에서 존재하는 묘한 낭만. 영화 전체에서 흐르는 경쾌한 OST가 너무도 잘 어울린다. 영화의 마지막,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로 우물이 넘쳐 시체가 스스로 나오는 모습에서 삶이란 건 스스로 흘러간다는 것과 그럼에도 우리는 이 순간의 일에 집중함으로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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