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기적 - 자신을 향한 용서

슬슬살살 2021. 12. 7. 21:27

기적은 일견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따뜻하고 유쾌한 토속적인 한국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적에는 구태 의연한 코메디도, 예측 가능한 신파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가슴아픈 시대적 배경, 가족간의 용서, 나아가 자기가 짊어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멋진 영화다. 예고편에서 보여준 박정민과 윤아의 풋풋한 연애담이나 걸쭉한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윤아의 매력은 본편에서는 양념으로밖에 기능하지 않는다. 오히려 박정민의 고집 이면에 깔려 있는 트라우마와 어색했던 누나의 모습이 너무 강렬하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주거조건 마저도 피눈물나는 노력이 필요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간이역이라는 형태로 치환해 보여주는데 달콤한 첫사랑과 어우러져 하나의 추억처럼 보여준다. 영화의 초반은 수학 천재 소년의 간이역에 대한 열망과 예쁜 시골소녀의 짝사랑을 재치 가득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흥미를 끌더니 중반에는 트라우마를 끄집어 내면서 엄청난 반전을 보여준다. 종장에 이르르면 간이역이 단순한 편리함의 모습이 아니라 슬픈 기억을 치유하고 가족의 화해까지 돕는 매개체 역할을 하면서 보는 내내 지루할 틈 없이 꽉 짜여진 이야기를 선보인다. 

 

80년대 시골의 아름다운 배경은 보는 재미까지 더해주니, 간만에 만난 퍼펙트한 영화다. 또, 클래식-건축학개론과는 또 다른 첫사랑의 모습을 정립했을 정도로 윤아의 연기가 너무 예뻤다. 무엇보다 목표를 통해 자기를 용서해 나가는 과정이 너무 아름다워서 특별한 성장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