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유쾌한 초반부를 지나 절정에 다다를 때 쯤 작가가 교체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매력적으로 쌓아올리던 캐릭터가 막판 한방에 무너지면서 평범한 한국 코메디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는 모습은 아쉽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려내는 시대상, 문제의식 만큼은 기존의 어떤 영화보다 매력적이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95년도 대기업에서 '여직원'의 존재는 잔심부름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번듯한 대학을 나와 근무하는'커리어 우먼'도 존재했지만 그렇다 해도 남자의 벽을 넘지는 못했던게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러니, 속칭 말하는 '상고'나온 '여직원'이라는 건 직원 취급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이 열악함은 그대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려는 멋진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게 포인트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 현실을 피하면서 사회에 저항하기 전에, 잘못된 사회를 규탄하지만 그 안에서라도 조금씩 바뀌려고 저항하는 것. 한 사람으로서 조금 더 나은 삶을 꿈꾸고 노력하는 모습은 그 어떤 여성 투사보다도 멋진 모습이다. 영화는 계약직 여직원 셋이 회사의 페놀 유출을 처리하면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코믹하게 그리고 있지만 페놀의 해결이 영화의 목적은 아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세 여성과 그녀들을 대하는 다양한 동료 직원들을 통해서 다양한 인간상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겪어볼 수 있다는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녀들은 이 편견에 얼마나 멋지게 대항하고 있는지. 영화 도중에 등장하는 대사 ' 어제의 너보다 오늘 더 성장했어'는 허세가 아니라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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