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더 배트맨: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슬슬살살 2022. 4. 17. 13:20

배트맨 시리즈의 다크함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배트맨의 탄생 자체에 에서 기인했다는 설정을 들고 나와 훨씬 더 복작하고 어두운 배트맨의 이면을 보여 준다. 덕분에 로버트 패틴슨의 아름다운 외모에 쏠린 초점을 충분히 분산시킬 수 있었다. 오히려 인간적 나약함을 나타내기에는 패틴슨이 더 적합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배트맨은 강도를 당한 부모님의 복수를 계획하고, 거대한 고담의 악에 맞서는 히어로였지만 그 배경에는 존경받는 부모와 그에 적합한 부를 가졌다는 면에서 완전무결한 영웅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 부모 역시 한때 악에 굴복했으며 나아가 고담이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나타나면서 도덕적인 타격을 입게 되고 배트맨이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영화의 주제로 드러난다.

 

새로운 배트맨에서 배트맨은 결코 무적이지 않으며 그동안의 작품 속에서 보여줬던 놀라운 기계 장치들, 무기들은 하향패치되어 다소 볼품없게까지 느껴지는데 그러한 다운그레이드가 배트맨을 보다 인간의 영역으로 소환하고 관객은 그를 슈퍼히어로가 아닌 담대한 선각자로 받아들이게 된다.

처음에는 부모에 대한 복수심으로 활활 타오르던 배트맨이 부모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가지게 되고 이는 빌런인 리들리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과거에 휩싸여 한쪽은 범죄자에 대한 무자비한 처단을, 한쪽은 연쇄적인 폭탄 테러를 통해 배트맨에게 칼날을 겨눈다는 점에서 리들리와 배트맨은 근본적으로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영화 중반을 지나면서 복수가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배트맨이 무조건적인 희생을 선택함으로서 보다 영특한 히어로물이 되었다. 종반부, 감전을 무릅쓰고 어떠한 기계장치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묵묵히 사람들을 구조하는 배트맨의 모습은 강인한 영웅이라기보다는 선구자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데 통렬한 액션으로 범죄자를 물리치는 모습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고뇌에 찬 배트맨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드러낸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시리즈에 비하면 부족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새로운 시리즈가 새로운 가치관으로 또 다른 독창성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 쿠키에서 보이는 조커의 모습은 식상함보다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만 보아도 이 영화가 다시 한 번 위대한 시리즈의 첫 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뎠음을 알려준다. 이번 기회에 다크나이트 3부작과 조커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