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나일강의 죽음' - 19세기 이집트로 떠나는 그랜드 추리 투어

슬슬살살 2022. 4. 10. 20:21

현대의 추리소설의 기틀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년 전 그녀가 만들어낸 구성, 플롯, 모티브, 전개 방식이 지금의 장르물에서도 쓰일 정도이니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다. 당시에 그녀의 소설이 인기가 있었던 것은 재미도 재미지만 그 배경의 아름다움에 있었다. 당시 세계 최고 강대국인 영국에서 유행을 하던 것이 바로 그랜드 투어,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곳을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영국에서도 최상위 귀족들만이 가능한 여가였다. 정보라고는 글밖에 없는 시대에서 나일강이나 오리엔탈 특급열차 여행 같은 이국적인 배경과 모험, 치정극을 치밀하게 그려낸 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건 너무도 당연하다. 


영화 '나일강의 죽음' 역시 당시 소설이 팬들에게 줬던 감정을 똑같이 전달한다. 이국적인 분위기, 눈이 돌아갈만 큼 아름다운 나일강과 피라미드, 예쁜 드레스, 평민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귀족들의 여행은 화면 가득 부러움을 동반한 가상 여행 경험을 제공한다. 


나일강으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주인공인 것만 같았던 신부, 리넷이 죽으면서 배 안은 혼돈으로 가득찬다. 배 안에서 화기애애했던 승객들은 리넷이 죽자마자 진짜 얼굴을 드러내며 각자의 약점, 추악함, 이기심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마침 배에 타고 있던 포와로의 추리로 진짜 범인을 잡아낸다.


단순히 예쁘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당연히 범인일 것 같은 두 남녀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고, 치밀한 추리로 그 알리바이를 깨트리는 모습은 추리영화로서의 재미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또, 귀족처럼 보였던 이들도 틈새가 생기고 나면 얼마나 불완전한 인간인지 조롱하고 비튼다. 귀족 역시 별거 아니야라는 느낌으로. 다만, '셜록'처럼 예상을 완전히 부서트리는 반전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잊지 말자. 아무리 뭐라 해도 이 소설은 80년 전에 쓰여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