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저 근현대의 아픈 상처로 남기기에는 희생자의 수가 너무 많다. 그 작은 섬 제주에서 무려 6만이 죽어야 했으니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결코 홀로코스트에 뒤지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제주에서 일어났는가, 여수와 순천까지 번진 이 대학살은 도대체 어떤 배경이 있는가.
1991년 발표한 '한라산의 노을'은 숨기기 급급했던 제주 4.3 학살을 가장 사실에 가깝게, 편중되지 않은 시각으로 써 내려간 르포 형식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실제 인물들에 하나하나 접근해서 각각의 시각으로 4.3 사건의 실체를 탐구한다.
제주 사름덜은 오죽 서로 간의 의논을 잘한다고. 잠수들은 불턱(제주 해녀 전용 바닷가의 야외탈의장)에서 밭일하는 아낙네들은 수눌음에서, 일상 하는 게 의논하는 거 아닌가. 싹 의견 일치를 봤던 모양이지.
제주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는데, 바로 '소도리 공론'이라고 부르는 토론행위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제주는 무거운 공납과 섬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육지와는 다른 문화를 가지게 되는데 어떻게든 힘든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민중들끼리 뭉쳐야 했고 육지의 품앗이보다 조금 더 강력한 형태의 '수눌음'이 발달했다. 고된 공납을 몇 명이서 책임지고 나머지는 그들의 먹거리까지 책임지는 형태의, 어찌 보면 공산주의에 가까운 공동 생산 방법이었는데 당시의 무거운 세금을 나름대로 메꾸기 위한 자구책이었으리라. 그런 행위는 소도리 공론이라고 하는 토론을 통해 결정되는데 여자라고 차별을 두지 않는 집단 토론제다. 결판이 날 때까지 토론을 하고 어찌 됐건 토론에서 합의가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밀고 나가는 형태로,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보다 공평한 듯 하지만 당의 결정에 따르는 사회주의에 더 가깝다.
사회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독립운동으로 해방을 맞고 남북이 갈리니 당연히 전국이 두 가지 이념으로 갈렸는데, 공동체 의식이 강한 제주도는 다른 곳보다 더 강렬히 저항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래로 육지 사람들은 흰 옷을 즐겨입고 제주사람은 갈옷을 입는다. 왜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 나라를 정하는 데 색깔을 가져야 할까. 잃었던 나라를 근 40년 만에 되찾아놓고 고작 한다는 수작이 무슨 색깔로 나라를 칠할지 그걸 놓고 살 판 죽을 판 싸운단 말가.
그러나, 이 소설은 이념으로 갈린 제주도의 처절한 모습을 그려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 각각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부터, 올곶은 민본주의를 가진 제주도민들이 서로가 서로를 이간질하고 물어뜯는 아비규환을 펼치기까지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를 처절하게 담아낸다. 처음, 제주도의 모습은 여러 의견들이 용광로로 끓고 있었지만,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남한 정부가 강력하게 통제를 하게 되고 도민들의 반발심에 남로당의 입김이 불어넣어지자 속칭 말하는 빨치산으로 활동한다. 이념보다는 정의에 가까운 빨치산인지라 자연스레 도민들의 지지를 받지만 전 도민을 학살하는 형태로 진압하는 국가에 대항하며 점차 북한과 같이 변한다.
제주 민중은 들불처럼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 봉기한 것이지, 결코 남로당의 지령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제주 민중이 일어선 참뜻은 백번 되뇌는 그것, 꿈속에서조차 잠꼬대처럼 외치는 완전 독립된 나라, 해방된 민족끼리 단합하여 서로 해코지 않고 화목하게 사는 거였는데. 뭔가? 당신들은 불쑥 어디서 나타나서 우리의 지도자 행세를 하는가? 왜 당신들은 제주 민중을 형제로 여기지 않고 오직 당의 과업을 완수하는데 이용되는 도구로 취급하는가?
남로당은 당의 이념으로 투쟁만을 요구하고 남한 정부는 빨갱이라며 사돈의 팔촌까지 처형하는 시대. 글의 후반부에서 성고문을 포함한 온갖 고문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처형은 '마루타'나 '아우슈비츠'보다 더하다.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 인간은 어떻게 악해지는가. 양 쪽 모두 제주도를 정쟁의 이념을 펼칠 장소로만 생각했지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수많은 민중이 살고 있었고 그들의 크고 작은 관계, 여러 이유를 헤아리지 못한 결과가 4.3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나타났다. 역사의 아픔이라는 평이한 레토릭으로만 표현하기에는 그 끔찍함의 정도가 너무나 아프다. 핏빛이라는 '한라산의 노을'에서 한없이 겸허해지고,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준엄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들은 평범했고, 평화를 원했지만 시대가 그들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우리가 눈을 부릎뜨고 있지 않는다면 언제건 우리에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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