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식탁 위의 한국사' - 오래 된 것이 아니라 지금 대중이 먹는 것이 한식이다.

슬슬살살 2022. 4. 25. 22:50

우리 사회에서 '먹는'행위는 단순히 기본적인 욕구 충족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사람들은 맛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 데코레이션까지 포함해 하나의 음식을 소비하고 있으며 세계 곳곳의 문화를 받아들여 재해석하는 한국의 음식은 또 다른 문화 상품이 되었다. 흔히들 한식 하면 비빔밥, 잡채, 불고기를 떠올리지만 정작 그 음식들을 한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과거 궁중에서나 먹던 고추장이 서민의 식탁에 오른 지 백여 년을 넘겼을 뿐인데?


한식 문화를 끈질기게 연구해 온 주영하 교수는 한식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가게에서 음식을 팔기 시작한 때의 음식이 곳 그나라의 식문화라 정의한다. 집에서 해 먹는 건 어느 국가나 있는 부분이고 그것이 독창적인 지역의 음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설렁탕을 과거 궁중에서 해 먹기는 했으나 대중적인 음식이 아니었고, 일제강점기 언젠가 여러 조건이 갖춰지면서 대중화가 되었을 때 그걸 음식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는 논리다. 

 

한국사회에 맥도날드화의 상징인 패스트푸드점이 처음 소개된 때는 1979년 10월 26일이다.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아케이드에 햄버거와 탄산음료를 판매하는 롯데리아가 문을 열었다. 


이 책에서는 자장면부터 비빔밥, 패스트푸드와 패밀리 레스토랑까지 근대 이후 우리가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 군들의 분석을 통해 우리 식습관과 문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짚어보는데 하나하나가 꽤나 흥미롭다. 예를 들면 10.26의 총성이 울리던 그날, 우리나라에 최초로 햄버거집이 나타났다는 사실 같은 게 그렇다. 또 왜 인천에서 쫄면이 유행했는지, 왜 결혼식에 잔치국수를 먹는지 같은 것들이 문화적 지리적 배경을 토대로 논리적인 이유를 들려준다. 밀가루가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국수는 만들기 어려운 값비싼 음식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쌀 대신 수입이 늘어나고, 면을 뽑을 수 있는 기계가 나오면서 단가가 낮아진다는 설명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다. 

 

대한제국 말기에 행해졌던 궁중 연회에서조차 참석자의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상을 내렸다. 다만 상에 차린 음식의 종류로 서열을 드러냈을 뿐이다.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먼저 살펴야지, 매우 특수한 사례를 들고 나와서 마치 보편적인 것인 양 문화적 특징으로 삼으면 안된다. 


또, 한식 문화에 대한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한다. 주인이 먹고 남은 음식으로 여자와 아이들이 먹었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나, 반찬을 펼쳐놓고 음식을 먹는것이 문화가 뒤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등등이 그것이다. 집에서 먹는 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펼쳐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하긴 프랑스의 집밥이라고 해서 샐러드와 수프, 메인디쉬와 디저트로 순서대로 내올 수는 없겠지. 

 

지구촌 여러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도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어온 문화적 혼종의 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화를 낼 독자들도 많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미셸 오바마의 한국 김치 사랑은 미국 사회의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이지, 그녀가 한국 김치를 매일 먹는 '유사 한국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한편으로는 한식이 가져오는 국수주의도 경계한다. 많은 이들이 한식에 주목하고 있지만 그것이 한국의 문화가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주영하 교수는 균형잡힌 시선, 끈질긴 자료조사와 구체적인 문헌 탐구를 통해 불모지에 가까운 한식 역사를 탐구한다. 아무래도 방대한 근거자료를 펼쳐놓다 보니 책이 다소 지루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황교익 씨와 같이 대중 영합을 위해 근거를 알 수 없는 주장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훨씬 신뢰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