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황금펜상 수상 작품집’ - 추리소설 불모지에서

슬슬살살 2022. 10. 23. 14:00

전통적으로 한국이 추리물의 불모지로 알고 있다. 하지만 되짚어 생각하면 K-드라마, K-무비 모두 넓은 차원의 추리물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마지막 반전을 준비하며 끈질기게 스토리를 빌드업하는 능력은 한국 문화 산업의 가장 큰 경쟁력이니, 이 모든 것이 추리라는 장르에 기반하고 있다. 추리라 함은 단순히 가해자를 찾아내는 행위 이외에 그 행동 이면에 있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공감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가해자와 범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한국식 추리물은 길게 여운이 남는다.

 

셜록 홈즈를 비롯해 최근의 많은 서양 추리물에서는 보다 복잡한 방식의 밀실을 만드는데 집중한다. 도저히 틈이 없을 만한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돌파하는 트릭에 찬사를 보낸다. 또다른 추리 강국인 일본은 트릭 속에 인간의 심리를 녹여 넣는데 탁월하다. 얼마전 읽은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 대표적인 예다.

 

반면, 한국은 등장인물을 실체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사람이며,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게 만든다. 한국의 추리소설에서 가해자는 읽는이에게 함께 공감할 것을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즐긴다. 이게 정유정 작가의 미스테리가 한국 시장에서 먹히는 이유다. <황금펜상>은 이런 한국의 유일한 추리문학상이지만 2020년에 이르러서야 그나마 수상집을 펴낼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2007년 열린 1회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의 수상작들이 모여 있는데 국선 변호사무는 남자처럼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 같은 작품들도 있고 실제로 무는 남자는 선암여고 탐정단이라는 드라마로 탄생하기도 했다. - 일각수의 뿔처럼 평면적인 작품도 있다. 모두 개성적일 뿐 아니라 외국의 미스터리물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을 보인다. 특히 14회 수상작인 흉가는 영화로 만들어져도 손색없을 시놉시스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