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곽재구의 新포구기행’ - 시인의 발걸음 따라가는 어촌 여행

슬슬살살 2022. 11. 7. 21:53

어촌 여행만을 고집하는 시인이 있다. 곽재구 시인은 늘 방랑하며 시를 쓴다. 시인이지만 시보다 여행하는 사색가이자 작가가 더 어울린다고 하면 실례일까. 그의 여행기는 고즈넉하면서 홀로 여행하는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줘 더 울림이 있다. 수많은 여행기가 화려하고 맛있고 즐거운 에피소드를 담아낸다면 곽재구 작가의 여행은 노와 같다. 배 젓는 노.

 

노인에게 노도의 노는 무슨 뜻인가 물었다. 노인이 흙바닥에 한자 하나를 썼다. 나무 목(木 ), 물고기 어(魚), 날 일(日)이 한데 모인 한자였다. 노 저을 노(櫓). 당신은 이제 이 한자의 의미를 알겠는가? 나무가 물고기를 만난 날, 배를 저어 앞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노이다. 노는 나무를 깎아 만들되 물을 젓게 되고 물속의 물고기를 만나게 된다. 산에 있는 나무는 물고기를 만날 일이 없다. 오직 노만이 물고기를 만날 수 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찾아 방랑하는 여행자의 이미지를 노는 지니고 있다.

 

노도에서 남긴 작가의 말처럼, 물고기를 만나는 나무와 같은 작가가 곽재구 시인이다. 대부분의 어촌마을이 비슷하게 생겼지만 때에 따라, 함께 하는 벗에 따라, 햇빛에 따라, 만나는 사람에 따라 매번 다르다. 그래서 그 비슷비슷한 포구에서마다 다른 사색과 특별한 평범함을 만난다. 어촌 하나하나의 이름에 담긴 뜻까지,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전의 글, 예술기행이 보다 여행기에 가까웠다면 이번 에세이는 조금 더 일기에 근접하다. 수년만에 오게 된 고향에서의 사색을 남기듯이, 정겨움과 이제 만나기 어려워진 그리움을 시인은 노래한다. 아마 이 글에 나온 포구를 방문하더라도 시인이 느낀 고즈넉함과 정겨움을 우리는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움도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맛집과 인생샷을 추구하는 여행으로는 그 어디서도 만나지 못한다.

 

늘 한 권의 책을 들고 훌쩍 떠나길 원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곽재구 시인은 소박하지만 어려운 그 꿈을 대신 꾸어주고 있다.


2020.01.11 - [열수레의 책읽기] - [곽재구의 예술기행] 시인의 감성으로 읽어낸 여행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