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비탈진 음지 – 기울어진 운동장의 처연한 삶

슬슬살살 2022. 12. 27. 21:15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이 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공정하지 못한 경쟁을 일컫는 말이다. 밝은 빛의 양지가 있다면 어두운 음지도 있다. 음지에 비탈진 곳이라면 어떨까. 어쩌면 비장하기까지 한 이 말을 제목으로 하는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음울하고 처연하며 답답하다. 그저 불쌍한 노인의 일평생을 들여다 봐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실에 가깝기에 읽는 이의 심경은 복잡하다. 조정래 작가님은 이 소설을 중편에서 장편으로 개작한 이유를 TV에서 본 한 장면으로 꼽는다.

 

최근에 어느 텔레비전 화면에 70객의 할머니 둘이 폐품 종이상자를 서로 뺏으려고 다투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떤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폐품을 주워 팔아야 하루 벌이 천 원이 될까 말까 하다며 탄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존재가 특이해서 텔레비전 화면에 비쳐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 70객들은 인사동 뒷골목에서도, 압구정동 뒷골목에서도, 천호동에서도, 구로동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에 비친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40여년 전의 ‘무작정 상경 1세대’입니다.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부끄러운 자화상은 안타깝게도 현재 진행형이다. MZ세대가, 영끌족이, 카푸어가, 코인거지가 넘쳐나는 현재에도 어디에선가 노인들은 한 줌의 폐품을 두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건강한 머슴에서 농사꾼으로, 도망자로, 지게꾼으로 살아온 복천 영감이 마지막 다리를 잃고서 이제야 제대로 비렁뱅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자조하는 장면은 너무나 연극적이면서도 비참한 련실의 독백이다. 비록 우리가 가난뱅이의 삶은 아닐지라도 이 도시와 자본 어디에서는 스스로 착취당하는 인생이 존재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될 터이다. 그들은 결코 무식해서, 배운게 없어서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운이 없을 뿐이었이다.. 운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사회를 우리는 결코 바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