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7번 국도 Revisited – 비틀즈의 미발표곡 route 7처럼

슬슬살살 2023. 3. 18. 12:06

그런 건 없다. 비틀즈의 미발표곡 중Route7이라는 곡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수는 소설의 마지막에 이를 밝혔는데 그 내용이 특이하다.

 

여기에 나오는 비틀즈의 싱글은 제가 아무리 찾아봤지만 이 세상에는 없었습니다.
혹시 구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길.

 

도대체 있다는지, 있었다는 건지 모호한 문장이다. 7번 국도는 그런 소설이다. 작가의 젊은 시절의 인상주의 풍의 그림처럼 관념적으로 다루고 있다.

 

완전한 망각이란, 사랑 안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보존. 그러니 이 완전한 망각 속에서, 아름다워라. 그 시절들. 잊혀졌으므로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기억의 선사시대. 이제 우리에게는 그 시절의 눈이 없지. 그 시절의 귀와 입과 코가 없지. 스무살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너무나 끔찍한 얼굴로 우린 살아가고 있는 셈이지. 한번 살았던 세계를 영원히 반복해서 살아가는 유령들처럼.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7번국도도, 사랑하는 세희도, 대립자인 재희도 아니다. 오히려 기억에서 모호하게 잊혀가는 감정의 소멸이다. 이야기로는 이렇다 할 사건이 있지 않다. 등단하기 전, 우연히 만난 재희를 통해 7번 국도의 존재를 알고 자전거 여행을 한다. 당연히 아리따운 여성을 두고 모호한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망각 직전의 왜곡된 기억이지, 사실이 아니다. 진실은 모두 사라지고 당시의 감정만이 그나마 남았지만 그 마저도 온전하지 않다. 소설보다는 시에 가까운 소설이다.

 

여기가 7번국도다. 동해안을 가로지르는 등줄기. 지금은 자동차 전용도로가 되어 소설처럼 자전거 여행을 하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