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격동의 대한민국 탄생부터 현재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친일의 굴레에 이르기까지를 국제정세에 비추어 원인을 치밀하게 파헤친다. 최근 윤대통령의 일본 외교 문제가 친일로 비화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어 보면 그들이 어떤 정신적 맥락에서 그런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먼저 미국은 다 이긴 전쟁의 종반에 굳이 일본에 원자탄을 떨어트렸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는 소련에 대한 외교적 경고라고 김동춘 박사는 이야기한다. 2차 대전이 어느 정도 승리로 기울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은 우군이면서 이념적으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소련과 전쟁이 이어질까 두려웠고 원자탄이라는 강력한 경고장을 보내게 되었다. 그 정도로 미국은 공산주의의 확대를 경계했고 동방의 작은 나라의 독립 문제는 큰 고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1945년 이후의 대한민국을 일본과 한 묶음으로 보아 패전국 처리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친일 전력으로 불안에 떨던 이들은 강력한 반공을 기치로 삼아 사회 전면에 나섰으며 미국이 이를 인정하며 행정적 요직에 다시 친일 세력이 기득권을 잡기에 이른다.
그래서 1950년대 이승만 정권 시기는 '연장된 식민의 시기'로까지도 볼 수 있다. 일제의 군국주의 천황제와 치안유지법이 반공주의를 가장 중요한 사상적 기둥으로 삼았던 것처럼 이승만 정권도 반공주의를 통치의 최고 원리로 삼았고, 반공주의자라면 범죄자도 용서했다.
한국이 1945년에 광복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나라가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국제사회에서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던 국가들이 1945년, 대거 독립을 하게 되는데 주권의 인정 조건은 그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력으로 저항했는가 여부로 나뉘었다. 안타깝게도 광복군이 본격적인 군사행동을 벌이기 이전에 2차 대전이 종료되었고 일본이 항복했다. 그래서 신채호 선생과 같은 지식인들이 강력하게 무장 투쟁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기는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아 해방된 이후에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우리나라는 해방국이 아닌 특별관리국으로 분류되었고 이는 미국과 소련의 신탁을 받는 또 다른 식민지로 이어진다. 그리고 일본과 달리 미국에 대해서는 강력한 반발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리가 미국을 알았을 때, 우리 사회는 나약한 하나의 나라였고 미국은 냉전 체제 가운데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던 때다. (...) 그러한 미국이 (...) 우리의 눈에 비쳤을 때, 그것은 곧 천하일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물고 물리면서 역사는 한국을 분단으로, 갈등으로 갈기 갈기 찢어 놓는다. 이는 현재 진행형으로 아직 봉합되지 않은 수많은 갈등들 - 여순사태, 4.4 사건, 건국절 시비 - 을 낳고 수태하기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과의 시비는 아직 가려졌다고 보기 어렵다. 설령 일본의 사죄와 배상까지 이루어진 이후에도 한국 사회 내의 상처를 보듬고 치료하는 것까지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다. 단순히 미래를 보자며 지금까지의 일을 용서하자 정도로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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