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거장의 초창기 작품 중 하나다. 뇌의 일부를 이식한 사람이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그 배경이 늙어가는 권력자들을 위한 실험의 일부라는 설정은 지금 관점에서 좀 유치한 면이 있다. 하지만 반전과 사건에 집중하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히가시노 게이고는 캐릭터의 심정적인 변화에 집중한다. 그래서 이 뻔한 스토리가 사람을 끌어들이게 만든다.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내 안의 무언가 분명히 예전의 내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대체 누구인가?
주인공 준이치는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고 아주 온순한 사람이다 우연찮게 강도로부터 어린아이를 지키다 뇌에 총을 맞지만 다행히 뇌 이식 수술을 통해 목숨을 건진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점점 준이치는 난폭하고 세상에 적대적인 남자가 되어간다.
저는 이식된 뇌가 전체의 몇 퍼센트쯤인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10퍼센트라고 치죠.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도 저는 예전과 같은 마음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고 해보죠. 그럼 비율이 20퍼센트로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도 제 마음에는 변화가 없는 건가요? 또 30, 40퍼센트로 계속 올라가 원래의 제 뇌는 1퍼센트만 남고 도너의 뇌가 99퍼센트를 차지하게 되었을 경우, 그 뇌를 통해 생겨나는 마음이 제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네요. 설마 뇌를 이식한 양에 비례하지는 않겠지만 그 나름대로 변화는 나타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불과 10%의 뇌가 이식되면 사람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소금물에 10%의 물을 더한다고 해서 소금물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조금 더 연한 소금물이 되는 개념일까. 아니면 정수알약처럼 한 편이 다른 한 편을 완전히 정복하는 개념일까. 게이고는 후자라고 생각하고 이 소설을 남겼다. 정복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발악한 준이치의 모습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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