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우린 원하지 않으면서 프로의 세계에 와있었다.

슬슬살살 2011. 6. 10. 23:50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한장면>

 

왜 이제서야 이 책을 본거야!!

이 책은 성인이 되어서 읽은 책중 10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재미있고 오랜만에 찌릿함을 느꼈던 책입니다.

심지어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개미눈곱만큼일지라도 영향을 미칠것이라 생각합니다.

2003년에 나온 이책을 그때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단언컨데 당시에도 이슈가 되었던 이 책을 읽지 않았던 이유는 이 책이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원작이거나,

그 비슷한 때에 방영되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과 관련한 다큐멘터리처럼 실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읽은 것도 순전히 와이프의 덕분으로 정말 읽어야 할 책을 이제라도 만났을 때.. 이 책에 나오는 말처럼

 

      이 책을 접하지 않고

    나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온걸까.

 

 그림 한장 없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문장들

 

 

 

이 책은 작가 박민규의 첫 소설입니다. 

지난번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고는 (☞ 보러가기)

독특하고 재치있기는 해도 너무 우울하고 정신없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역시 파반느는 삼미의 83년 버전이었던가요?

두 소설 모두에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는데 박민규는 단순히 문장력만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쪼개고 재구성해서 시각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고민을 하는 작가입니다.

 

예를 들면 콤마(,)와 대시(-), 줄바꿈, 문장마침이 한장에 맞춰 끝내는 배열 등을 사용해서

읽을때 본인이 의도한 호흡으로 독자를 끌어드립니다. 그러다보니 작가가 생각한 강약에 속절없이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설명만 가지고는 어렵겠지만 문장의 구성으로 효과음을 넣는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또한 글로서의 문장 역시 너무나 주옥같아 이를 대적할 사람은 <마음의 소리>의 조석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어떤팀인가.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 생기고, 6개의 팀이 창단하였으며, 인천에서는 삼미그룹이 슈퍼스타즈라는 팀이 창단 되었습니다. 

주인공의 나이 12살이던 그 해 82년, 프로야구는 창단부터 엄청난 열기로 출발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야구를 통한 자기수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첫 시즌을 맞았고 주인공은

너무도 당연하게, 어린이 팬클럽에 가입했습니다.

5,000원의 가입비로 삼미슈퍼스타즈의 스포츠가방과, 야구모자와, 야구잠바와,

사인볼과, 컬러 스타카드와, 대형브로마이드와, 선캡과 방수돗자리를 받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인생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컬러 스타카드나 브로마이드는 그렇다 쳐도, 도대체 스포츠가방과 야구모자, 야구잠바와 사인볼,

선캡과 방수돗자리도 없이 - 나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걸까. (본문 47P) 

이렇게 인천 소년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프로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는 그해 엄청난 대기록을 세웁니다.

너무 많아서 다 헤아리지도 못하는 기록들인데, 

삼미는 시즌 최저승률을 비롯해, 최다실점, 특정팀 전패, 최다 득점차 등등

아직까지도 깨어지지 않고 있으며, 한국 프로야구가 존재하는 한 절대 깨질리 없는 기록들이 모두 이 해에 나왔습니다.

이렇게 패배의 대명사를 넘어 아마추어적인 야구를 하던 삼미는 2년차인 83년 또다시 부활합니다.

장명부라는 초인을 중심으로 삼미는 전후기 리그를 모두 2위에 올라섰으며 승률 5할이상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거둡니다.

그리고 84년 프로야구 최초 노히트 노런기록의 제물이 된 삼미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85년에는 마지막으로 프로야구 최다연패 기록을 스스로 갱신하면서 해체를 맞습니다. 

 

사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이 주는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1차례의 빛나는 승리와 감동 등등등

 

삼미로 인한 주인공의 성장, 우리 모두 그렇게 길들여졌다.

 

삼미의 해체로 주인공은 '프로'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을 느끼게 되면서 일류 대학을 위해 매진하게 됩니다.

삼미는 못한 것이 아니라 평범했던 팀이고 프로의 세상이 된 이 시대에서 평범한 팀은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삼미는 평범했으며 중산층이라 할 수 있는 MBC가 눈코뜰새 없이 노력한 삶이었던 것입니다.

1위를 차지한 OB베어스는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정도로 노력을 한것이지요.

본인이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패배자가 될것이라는 두려움을 갖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현실에서 1등인 사람들은 절대 허리가 부러져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과,

여기에서 본인이 삼미의 팬이던 시절 1등팀이던 OB 소년 팬클럽의 비웃음과 경멸의 이유가, 

삼미의 팬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소속이 문제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렇게 복잡한 사고방식을 거치지는 않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이유로,

 

'죽는한이 있어도 좋은 대학에 가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던 아침이었다. (본문 130P)

 

그냥저냥 사는 삶

 

그렇게 일류대에 어릴적 삼미에 열관하던 친구 조성환과 나란이 입학한 주인공은 졸업장을 따기 위해,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시험치고, 적당히 술마시고, 적당히 투쟁하다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장사가 될리 없는 홍대 앞의 작은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첫사랑을 만나고, 첫경험을 가지고,

또 헤어지고, 방황하다, 가장친한 친구 조성환의 갑작스러운 일본행과 졸업을 맞습니다.

젊은 시절이 끝난겁니다. 그 해, 삼미 슈퍼스타즈는 청보 핀토스를 거쳐 태평양 돌핀스라는 이름을 가집니다.

그렇게, 봄의 왈츠는 끝나가고 있었다. 왜 더이상 춤을 추지 않나요? 네, 왈츠가 끝났거든요.(본문 197P)

 

직장인, 정리해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삶

 

일류대를 나온 덕에 주인공은 대기업에 입사하고 10년이 지나 너무나 바쁜 직장생활로

이혼을 당합니다. 이 상황을 박민규 작가는 당시에 유행하던 두개의 책 제목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땅에서 보편적인 결혼의 대부분은 <가정을 버려야 직장에서 살아남는다>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의 결합이다.

(본문 217P)

 

 또, 98년 배경답게, 정리해고도 당합니다.

결국 "가정을 버리고도 회사에서 살아남지 못한 것"입니다.

이 때 일본에서 돌아온 조성환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위대함을 역설하고 그 취지에 공감하면서..

 

"처음 널 봤을 때 ..... 내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어땠는데?"

"9회 말 투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볼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았어"

"뭐가?"

"너 4년 내내 그렇게 살았지? 내 느낌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 꺼야.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그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라고"

"........"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볼?"

"투스트라이크 포 볼! 그러니 진루해"

"진루라니?"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야.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더이상은 속지마.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보기에 그 공은 - 이제 좋은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본문235P)

이 이야기 직후 주인공과 조성환이 캐치볼을 하다 하늘을 쳐다보는 장면은 정말이지 등줄기가 찌릿한 느낌이 오는 정도였습니다.

조성환의 논리는,

 

82년 미국은 자본주의의 프랜차이즈들을 만들고 있었고 그곳에서 자본을 쪽쪽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 <프로>라는 것을 전파시켰고, 그 첨병이 프로야구다.

다들 야구는 하고 있었으니 잘 했었는데 갑자기 프로야구라니 다들 어리둥절했고

그때, 프로는 아름답다는 둥, 프로는 쉬지 않는다, 프로만이 살아남는다는 정신을 주입했다.

<인생>을 살고 있던 국민들이 어느날 갑자기 <프로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무한경쟁사회가 자연스러워진 프로들의 시대가 왔는데 위대한 삼미 슈퍼스타즈 만이 그 사실을 알아채고는

<치기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자신들만의 야구를 했고 완성시켰다.

다들 우승을 목표로 할 때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을 목표로 한팀 답게...

라는 것입니다. 물론 철저하게 자기생각이라는 단서를 달고는 있지만...

프로의 세상이 된 후 더욱 각박해 진 것 같습니다. 평범하게 살아서는 삼미처럼 꼴지를 하는 삶이 되어버린 겁니다.   

 

마지막 팬클럽의 창단

 

이를 계기로 이들은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창단하고 삼미의 정신을 기려 프로들의 세상에서 한걸음 물러난 채

오히려 더욱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조금 부족하지만 자기의 삶을 찾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책입니다. 그러니까 평점은 만점~

 

이 프로의 세계에서 나만의 야구를 보여주는 삶을 찾는 것이 성공한 인생입니다. 플레이 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저자
박민규 지음
출판사
한겨레신문사 | 2003-08-1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83년 한해를 제외하고 만년 꼴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를 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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