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구석구석 방랑가족(여행, 맛집)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8.15 맞이 기념 데이트..

슬슬살살 2011. 8. 15. 22:38

 

 

 

독립문 인근에는 서대문 형무소역사관이라는 애닲은 역사의 현장이 남아 있습니다.

8.15 광복절을 맞아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1908년 일제시대에 경성감옥으로 만들어져 45년 해방때까지 독립운동가를 주로 가두는 용도로 쓰이다가

이후 87년 경기도로 형무소가 이전할때까지 구치소로 사용 되었습니다.

 

건물의 형태가 우리나라의 건축양식과 매우 다르고 용도가 특수해서인지 특이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람 루트가 1개로 되어 있고 안내판이 잘 되어 있어 관람하는 데 상당히 편리합니다.

 

1. 전시관

첫번째 관람 코스는 옛 보안과 청사로 쓰였던 전시관입니다.

이곳에는 형무소의 역사와 이곳에 수감되었던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이곳의 모습은 일반적인 박물관과 다르지 않다.

 

 

(左) 용수라 불리는 것으로 수감자의 모습을 외부에 보이지 않으려 씌웠다고 한다.

(右) 수감자의 발에 채웠던 족쇄.. TV에서 많이 보았지만 직접보니 그 묵직함이 전해져온다.  

 

 

100년 전의 수감표이지만 지문과 인상기록 등 나름 체계화된 재소자 관리를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3.1운동때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낼때 사용했던 목각판.. 이게 아직도 남아있다니..

 

2층에서는 독립운동가의 수감표를 모아 놓은 전시실이 눈에 띕니다.

 

독립운동가의 수형기록표 5,000여장이 방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는데

동네건달 처럼 보이는 사람부터 보기에도 앳되보이는 어린 소녀까지.. 하나하나의 사진마다 사연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 중에는 아직도 살아 계신 분도 있겠지요.. 어찌 보면 한국 근현대사의 소중한 자료입니다. 

 

 

전시관 지하에는 사형을 집행했던 시설이 복원되어 있고 한쪽 벽에는 이곳에서 사형을 당한 독립운동가의 사진들이 남아 있습니다.

한 가운데가 유관순 열사입니다.

 

 

지하에는 각종 고문도구들과 밀랍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어릴적 독립기념관에서 봤던 모형들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어린마음에 너무 센 충격을 받아서인지 오바이트를 하고 말았었지요..

성인이 되서인지 이곳의 수위가 약한 것인지 그정도는 아니었지만 눈쌀이 절로 찌뿌려지는 곳입니다.

불과 7~80년 전의 일이라니..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곳입니다. 

 

2. 중앙사~옥사

 

 

이제 본격적인 당시의 수감생활을 알 수 있는 옥사입니다.

옥사의 형태는 아래 그림처럼 사방으로 뻗어가는 형태로 생겨 있는데

죄수간 만남을 최소화하고 간수가 한곳에서 모두 관리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설계된 것입니다.

 

 

한쪽 벽에 걸려있던 재소자들의 시간표..

눈코뜰새 없었음을 알 수 있다.

 

 

한 2평 정도 되는 옥사 안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가상인줄 알면서도 문이 닫힐때에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옥에 창이 있던 것도 신기했는데요,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창 밖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왼쪽은 감옥 내부에 있는 시설물.. 복도를 내다볼 수 있는데 움푹 파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왼쪽에 있는 작은 버튼은 긴급 상황시 간수를 부르는 용도였다고 하는데 누르게 되면 오른쪽 사진처럼 막대기가 바깥쪽으로 튀어나갑니다. 저것을 보고 간수들이 찾아 오는 것이지요..

 

 

또 독방도 볼 수 있었는데 독방은 그야말로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정도의 공간.

창문도 없어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을텐데요.. 독방의 무서움은 바로 그 외로움과 지루함이 아니었을까요? 

 

 

사진을 찍다 놀라 위를 올려다 보니 간수 인형이 저를 감시(?)하고 있네요.. 저런 전시품들이 소소한 관람재미를 줍니다. 

 

 

재소자들은 간수의 눈을 피해 벽을 두드리는 암호를 만들어 냈는데 이를 타벽통보법이라 합니다.

안창호 선생이 수감되었을때 먼저 수감되었던 김정련선생이 이를 알려주다 간수에게 걸리자 똥통을 뒤집어 쓰고 소란을 피웠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옥사 외부로 나오면 감옥이라기 보다는 외국 대학의 캠퍼스 같은 풍경입니다. 과거에는 잔디가 없어 상당히 삭막했겠지요..

뒷 건물에 보면 흰색의 자욱이 남아 있는데 해방 이후 서울 구치소 시절 화장실이 붙어 있다가 전시관이 되면서 떼었다고 합니다.

 

 

독방은 화장실 역시 따로 썼습니다. 이곳이 독방에 연결 되어 있는 화장실 구멍입니다. 

 

3. 공작사

공작사는 과거 재소자들이 노역을 했던 장소입니다.  

 

공작사 입구에서..

 

일반적으로 벽돌을 만들거나 전쟁물자를 만드는 업무를 했다고 하는데 아래 시간표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노동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합니다. 또한 식사 역시 부실해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고 하는데 김구선생 같은 분들의 기록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노역 시간표와 만들어진 벽돌들.. 벽돌에는 생산한 곳의 문양이 새겨지게 됩니다.

노역 시간표의 노란 부분이 작업시간입니다. 실제로는 저것을 초과하기도 했다는 군요..

 

 

공작사의 바깥쪽에는 옛 나전칠기 공작터가 연못으로 남아 있습니다. 

 

 

공작사의 바깥쪽 얕은 언덕배기에는 한센병 환자들만을 따로 수용하던 옥사가 남아 있습니다.

망루도 한개 남아 있어 당시모습을 보여줍니다.

 

4. 추모비~시구문  

마치 위성방송 안테나 같은 추모비가 서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쓰여있습니다.   

 

 

 

넓은 형무소 한켠에 사형장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곳이 사형장인데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2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사형집행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였는데 상당히 을씨년 스러웠습니다.

왼쪽에 있는 나무는 통곡의 미루나무라 불리는 나무인데 23년에 심어졌다고 합니다.

사형수들이 마지막으로 눈에 담는 나무였을 것입니다.

 

 

사형장 뒤편에는 시체가 나간다는 시구문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형집행을 알리지 않을 때 몰래 사용했던 통로라고 하는데요 현재는 이 끝에 극동아파트가 있습니다.

(저라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아요

)

 

 

과거에는 위 사진처럼 운동장도 재소자들이 서로 만날 수 없게 격벽을 쳐 놓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자리만 남아 있습니다.

  

 

어느덧 5시입니다. 전부 돌아보는데에는 1시간 가량이면 충분하네요.

내일이 광복절이어서 행사준비로 한창입니다. 

 

5. 취사장~종료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취사장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취사장은 2012년까지 복원이 완료된다고 하는데 지금은 기념품 매장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꼭 두부를 먹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나가기 직전 기념촬영..나름 의미 있는 8.15를 보냈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공간을 찾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되는 것 같습니다.

꼭 극장이나 전시를 보러다니지 않고 이런 데이트도 의미가 있겠지요..

광복절이어서인지 학생과 가족단위가 많이 찾았는데 빨리 복원공사가 완료되길 바랍니다.

입장료는 1,500원이고 주차요금은 10분에 300원입니다. 지하철로는 독립문 역에서 내리면 됩니다.

 

PS. 꼭 서대문형무소의 마크가 홈플러스 마크같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