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판타지의 세계를 연 이우혁님의 치우천왕기가 작년에 드디어 완결 되었습니다.
매니아층이 많기로 유명한 작가이면서도 작품수가 많지 않아 많은 팬들의 애를 태우는 분 작가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치우천왕기는 2003년 첫 권이 출간되었으니 무려 8년만에 완간된 작품인 것입니다.
중간중간 출판사와의 계약문제로 인해 책의 구성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전체적인 맥락으로 봤을때 크게 지장을 주는 선은 아닙니다.
(그래도 기존 들녁의 판형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짜증이 좀 날 것 같기는 해요~)
기존 들녘이라는 출판사에서 9권까지 내오다 엘릭시르란 곳에서
9권 이후를 포함해 6권으로 압축해 출간했습니다.
#1. 장대한 스케일과 캐릭터의 어울림
기원전 2,700년 전의 전설을 모티브로 하는 지라 각종 설화와 전설, 얼마 되지 않는 기록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야 했기에 자칫하면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거나 용두사미가 될 뻔 했습니다. 그렇지만 왜란종결자처럼 정리가 안된다거나, 무리한 설정을 이용하는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캐릭터를 통해 완전히 이야기에 빠지고 그 이야기가 촘촘하고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어 판타지라는 장르에 한정짓기에는 아쉬울 정도입니다.
국가대표 축구 응원 서포터즈인 붉은 악마의 상징이 바로 이 치우천왕입니다.
극 초반에는 캐릭터 구성과 설정을 진행시키기 위해 지루한 감이 있지만 어느정도 이야기의 방향이 잡혀진 2권부터는 한치앞을 알 수 없는 전개와 놀랄만한 반전, 그 뒤를 잇는 또다른 반전과 장대한 전투장면, 속도감으로 읽는 즐거움은 배가 됩니다. 이 반전이라는 것이 설령 유추한다 해도 다시 반전이 이루어지고 또 그 이유 같은 것들은 보고 나서야만 아~ 하고 감탄할 수 있는 레벨입니다.
특히 읽으면서 갑툭튀 같은 구성에 눈쌀이 찌뿌려 지다가도 (예를 들면 느닷없는 신수의 출현 같은) 그렇게 전개된 논리적인 이유가 후반부에 나타나는 식으로 독자의 뒤통수를 쌔끈하게 후려 갈겨 주지요..
등장 캐릭터 역시 이런 류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절대적인 위상의 캐릭터가 아닌 평범함에서 조금 나아가 있는 정도로 그럴싸 합니다. 또 적들 역시 절대적인 惡이 아닌 입체감 있는 캐릭터로 설정 되어 있고 그 힘의 균형 역시 잘 잡아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쓸때 이런 부분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치우천왕기 만큼은 근래 드물 정도로 밸런스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2. 고대인의 눈에서 바라본 세계관
이런 류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실과의 연결성인데, 치우천왕기는 실존했거나 실존했던 기록이 남아 있는, 또 실재 했던 이야기로 추정되는 것들을 잘 엮어 이야기에 녹여 냈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100% 작가의 상상력일 지라도 재료들은 사실들인 셈입니다.
예를들면 물가에 살았던 하백족의 이야기(예를 들면 극 중에서 하백족의 족장인 진몽회가 최고의 영웅이 잠자리를 하면 영웅이 나온다는 전설을 만들어 냈는데 주인공이 이루어지지 않고 먼 훗날 하백족에서 영웅이 나옵니다. 바로 주몽이지요), 소녀경의 주인공인 소녀와 천부경의 기록들, 보돈차르를 중심으로 한 몽골의 이야기들, 그 외에 실제로 남아있는 몇 되지 않는 기록을 꼼꼼히 찾아내 소설 내에 집어 넣었지요.. 그 기록들은 고대에 쓰여지거나 혹은 구전된 내용들이라 명확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인데 그것을 사실화 시킨 작가의 노력이 대단합니다.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이 소설은 단순한 판타지에서 벗어나 고대인의 눈 그 자체로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3. 장대함과 디테일이 함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두가지 축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인 치우천·비 형제의 이야기로서 일반적인 모험소설처럼 미시적인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그 안에는 암투와 음모, 사랑과 우정 같은 감성적인 부분이 다루어 집니다. 또다른 축은 4~5번정도 되는 전투 장면인데 이 부분들 만큼은 개인의 시각이 아닌 전체의 시각에서 그려집니다. 공상을 뺐는 전투나 탁록에서의 유망과의 전투, 헌원과의 2차 탁록대전 등이 웅장하게 표현되고 있어 완전히 빠져들어 갑니다. 개인적으로 치우천왕기를 읽으면서 왜란종결자와 같은 작가의 글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김산호 화백의 탁록대전도
#4. 게임에 걸맞는 구조. 멀티유즈의 가능성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뜬금 없게도 파이널판타지라는 게임이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고대를 배경으로 개성있는 동료들과 함께 크고작은 에피소드와 미션들을 해결하면서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해 나가는 과정이 마치 잘 만들어진 롤플레잉 게임을 플레이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영화는 어렵겠지만 조금더 다듬어서 게임이나 만화화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게임 파이널 판타지의 장면들
그렇게 다양한 플랫폼으로 재구성되어 많은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이 작가가 애초에 기획했던 의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고대사를 알리는 역할에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100% 허구일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안다면 그것이 진실이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예를 들면 삼국지의 조운을 떠올릴때 영화 적벽대전이 더 사실에 가까울 지라도 KOEI의 게임속 캐릭터를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은 것처럼 말이지요.
한국에도 이런 이야기꾼이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준 그야말로 한국형 판타지의 대작 중 대작입니다.
치우천왕기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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