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명작으로 불리는 <그날 밤의 거짓말>은 발표되자마자 각종 문학상의 후보에 올랐으며,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스트레가 상을 수상했다. 특히 부팔리노가 스트레가 상 후보에 오르자 "이렇게 훌륭한 작품과 경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며 "우리중 부팔리노와 경쟁할 작가는 아무도 없다"며 후보자들이 전원 자진 사퇴해 화제가 되었다.
어느 중고 장터에서 구입한 이책을 고르게 된 배경은 책 내지에 적혀져있던 서평 중 문학상에서 경쟁작들이 전원 사퇴했다는 저 믿기지 않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스트레가 상의 권위를 한국에서 추측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관련 보도들을 보면 이탈리아에서는 최고 권위의 상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저 전원 사퇴와 관련한 기사는 찾을 길이 없지만....
추리소설로 보이지만 이 책은 철학서이다
이 작품은 읽기 전에는 흥미진진한 추리소설로 보인다. 4명의 사형수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기회. 그것은 하룻밤이 가기 전에 <불멸의 신>이라 불리는 그들의 배후의 이름을 누구 한사람이라도 적어서 낸다면 그들 모두가 사면 되겠지만 모두가 백지를 낸다면 사형을 집행하겠다는 제안이다. 모두가 왕권에 저항해 구속된 정치범들인 만큼, 배신이야 말로 신념에 관한 문제다. 그렇지만 자신의 신념과 무관하게 다른사람이 발설을 한다면 자신은 목숨도 구하고 신념도 지킬 수 있는 상황. 아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벌써 신념이 흔들린다는 얘길지도 모른다.
자, 이제 4명이 밤새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여기까지만 본다면 죄수의 딜레마를 모티브로 한 추리소설로 보이지만 일반적인 추리소설을 읽듯이 전개 하다보면 상당히 철학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 왠만큼 박식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용들이 독자를 참 난처하게 만든다. 단테의 <신곡>이나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의 인용, 파올로 성인의 편지 문구들의 패러디, 바이런의 시, 전설 등등 이탈리아와 유럽의 고전들을 거의 두페이지마다 사용을 하는데 주석이 있다 하더라도 그 본질적인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공부가 너무 짧다.
<여기부터는 스포일러입니다.>
등장인물
이 책에는 4명의 죄수와 1명의 수도승, 1명의 교도소장이 나온다. 4명의 죄수는 하루가 가기 전에 교도소장에게 <불멸의 신>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그들이 갇혀있는 감옥에는 치릴로 수도사라 불리는 또다른 반란군의 수괴가 갇혀 있었다. 그래서 그 수도사의 주재 하에 4명은 각각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하룻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데카메론>이 연상되기도 한다.
콜라도 인가푸: 별명은 남작. 실제 남작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쌍둥이 동생이 왕권에 저항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동생을 따라다닌다. 동생이 어이없는 결투로 사망하자, 동생의 활동을 이어받아 왕권에 저항한다.
살림베니: 자칭 시인. 음악 애호가이다. 반란군의 주요인물인 마니아체 공작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그의 죽음으로 그 영지에 머물러 살게 되고 미망인과 남겨진 그의 아들과 지내게 된다. 3개월쯤 지나 돌아가는 길에 살리베라는 유명한 도둑에게 습격당하여 묶인 상태에서 공작부인이 강간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 것을 본 그의 아들의 자살까지 목격한다.
아시젤라오 델리 인체르티: 사생아로 태어나 수도원에서 자랐으며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 후 군인인 아버지를 찾아 군인이 된다. 그 후 아버지를 찾게 되고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를 죽인다.
나르시스 루치로라: 학생. 유부녀와 사랑에 빠져 감옥에 있는 그녀의 남편을 구하는 일을 돕는다. 이후 남편대신 체포되어 감옥으로 오던 중 남작의 습격으로 자유를 되찾았다.
결론
이 들이 밤새도록 한 이야기들. 사랑과 인간적인 슬픔. 고뇌가 담겨있는 그 이야기들 속에는 조금씩 <불멸의 신>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목소리라던지 신분이라던지.. 그리고 결국에는 논쟁 끝에 학생이 그 <불멸의 신>의 정체를 이야기 하고, 이야기를 듣던 치릴로 수도사는 정체를 드러낸다. 그의 정체는 바로 교도소장. 교도소장은 숨어서 그들의 고뇌와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진실을 알게 된 교도소장은 의기양양해 하며 애초에 약속했던 데로 투표함을 확인하지만 아무도 이름을 적은 사람이 없다. 결론적으로 4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불멸의 신>의 정체는 알려졌다.
또다른 이야기
맨 마지막 단락은 교도소장이 자살을 하면서 왕에게 보내는 유언이자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편지에서 교도소장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4명의 이야기가 실제로는 거짓이라는 것. 남작은 형이 아니라 동생이었으며, 그의 형은 결투가 아닌 자살했다는 것. 나르시스는 가출이 아니라 방탕했기 때문에 쫒겨난 것. 아제실라오는 상관과 사소한 다툼끈에 살인을 한것. 살림베니가 한 이야기 중 살리베라는 도둑은 없었고 본인이 공작부인과 정을 통했고 그의 아들이 영지를 이었다는 것. 등등... 모두가 거짓말이 었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이야기는 밝혀진 <불멸의 신> 정체도 거짓이라는 것. 그 대가로 <불멸의 신>이라 지목된 왕의 동생이 숙청되면서 왕위 계승자가 없어져 버리는 비극이 초래된 것이다.
이 책은 1880년대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사건의 배경이 어느 왕인지, 실제의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인지 등등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왕권에 저항하여 민중을 구한다는 가치와 개인의 목숨. 민중의 자유와 신념과 그에 반하는 자신의 욕구와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진실을 끝까지 지키는 것과 목숨을 구걸하는 것. 혹은 그 두가지 모두 하지 않는 것 등등 여러가지의 가지수를 두고 가장 가치있는 욕구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하지만 끝까지 가장 가치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날 밤의 거짓말
'열수레의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홀로 사는 즐거움>법정스님의 소박한 삶을 통해 만끽하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자연 (0) | 2012.04.25 |
---|---|
<객주>조선의 마지막을 누빈 보부상들의 애환과 생애를 다룬 명작. 읽어보면 언어영역 점수 오를껄? (0) | 2012.04.18 |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잠언을 읽지 못하는 이가 읽는 법정스님의 가르침 (0) | 2012.03.20 |
<위험한 특종>대통령의 아이가 죽었다. 진짜 진실은 무엇인가. (0) | 2012.03.17 |
<내 지도의 열두방향> 그저 부러울 따름인 여행. 간접경험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안돼. (0) | 2012.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