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랐다.
이 책이 새로나오는 게임의 프롤로그 역할을 하는 작품인지.. 알았더라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책은 '아키에이지'라는 게임의 2천년 전을 다루고 있는 판타지 소설이다. 이 게임을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완전히 백지인 상태에서 이 책을 들여다 볼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허탈함으로 되돌아 왔다.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전민희라는 이 젊은 판타지 작가의 글은 처음이다. 사실 판타지만큼 쓰기 어려운 글도 없다. 일반적인 문학에 비해 새로운 세계의 창조라는 작업을 해 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D&D를 비롯한 유럽의 중세 등등 암묵적으로 동의가 되어 있는 요상한 세계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정도의 창의력은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 실패하는 대부분의 작품이 양판소라는 이름으로 무너져 내리게 마련이고..
적어도 한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적절하고 매력적인 세계를 창조해 냈다. 거기에 덧붙여 이 작가는 상당한 수준의 글솜씨를 가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물론 순문학의 작가들과 비교했을 때는 평이한 수준이지만 적어도 판타지라는 장르 내에서는 작가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수준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은 그녀의 글을 읽는데 있어 충분한 몰입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에는 크게 두명의 남녀주인공이 나온다. 전나무에 해당하는 키프로사와 매에 해당하는 진이 그들인데 여기에 실린 5편의 글들은 각각의 그들의 에피소드들이다. 서사적으로 하나의 긴 이야기가 이어진다기 보다는 짤막짤막한 사건일지같은 느낌이다.
진의 이야기
무희와 왕 사이에서 태어난 진은 왕비의 분노를 피해 달아나지만 왕비는 끈질기게 추격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을 돕고 진의 아비 노릇을 한 왕비의 막내동생 라반이 죽는다. 9년동안 도망다닌 후에 그들은 왕성으로 복귀하고 진의 어미 티나는 아들을 지키는 아름다운 여성에서 어떻게든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왕비에게 복수하려는 독한 후궁으로 변화한다. 진은 성년식을 겸한 출정에서 상당한 공을 세우지만 그 과정에서 신비한 세계의 정보를 얻고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세계의 수도로 향한다.
키프로사의 이야기
추운 지역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전나무성에는 눈의 새라는 전설의 짐승이 잡혀져 있다. 영주의 손녀지만 영주의 미움을 사고 있는 키프로사는 그 새를 타고 세계의 수도에 가는 것이 꿈이다. 어느날 전나무성의 종주국에서 전쟁 참전을 요청하기 위한 사신단이 도착하고 무례하게 행동하다 눈의 새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이 새를 키르포사가 놓아주게 되어 눈의 새는 그녀에게 길들여 지고 키프로사는 수도로 향한다.
키프로사와 진. 게임 개발사와 동행하는 만큼 멋진 일러스트가 돌아다닌다.
내용을 요약해 보니 수많은 판타지소설의 배경과 큰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전민희의 탁월한 캐릭터 구성과 촘촘한 문장들이 스토리를 겹겹이 에워쌌고 그 결과는 훌륭한 신세계의 창조로 이어졌다.
꽤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었고 끝날때까지도 즐거웠지만 게임을 하지 않을 나로서는 마무리가 허망할 뿐이다. 이후에 어떤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맛있는 음식을 시식만 한 느낌이다. 쩝쩝 입맛만 다시게..
전나무와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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