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몸값. 1
오쿠다 히데오가 평범한 소시민의 일탈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런면이 있는줄은 정말 몰랐다.
그냥 헌 책방에서 눈에 띄는 제목에 샀을 뿐인데.. 아마 최근 읽었던 책 중에 최고 인듯 하다.
그간의 오쿠다 히데오의 이야기와는 달리 정치적이면서, 빈부격차에 따른 계급투쟁 같은 심오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런 주제를 다루면서도 특유의 긍정적인 문체들과 위트. 톡톡 튀는 캐릭터성은 충분히 생길만한 어두움을 싹 날려 버렸다. 여기에서 오쿠다 히데오의 대단함이 나타나는거다. 한국에서는 이런식의 이야기. 절대 나올 수 없다.
배경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석달 압둔 어느날의 도쿄, 주인공은 도쿄대 대학원에 다니다 휴학한 시마자키 구니오다. 가난한 시골출신이지만 뛰어난 머리 덕택에 도쿄대에 진학한 구니오는 조용한 성격의 평범한 대학원생이다. 운동권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러던 구니오가 공사장 인부로 일하던 형의 죽음으로 공사장 일을 경험하면서 인생관이 변화하고 세상에 눈을 뜬다. 도쿄와 지방, 부자와 노동자간의 격차가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누군가는 컬러 TV로 올림픽을 보는 세상에 기차 한번 타보지 못하고 마요네즈 맛 한번 보지 못한채 여생을 일만 하다 마쳐야 하는 시골의 촌부들. 고작 공부를 잘했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 것처럼 대해지는 구니오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 그 정점에는 국가가 있었던 것이다.
올림픽 공사를 하는 인부 몇명이 죽어나가는 것 따위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국가에 저항하여 폭탄 테러리스트가 되어 올림픽의 몸값을 요구한다.
이렇게만 보면 주인공인 구니오가 열혈 투사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일종의 사회주의 노선이라는 것이 이데올로기 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반면에 구니오의 활동은 개인적인 감성에 치우친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당하다 생각되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한다라는 무식하도록 순수한 그 의도는 주인공의 테러가 성공하기를 빌도록 만든다.
중간중간 마르크스를 비롯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내용들이 나오지만 상당히 쉽게 풀어져서 서술되어 있어 딱딱하지 않다. 또, 히데오는 계급투쟁에 대해 우호적인 것 같지만 운동권에 대해서도 상당히 냉소적인 것 같다. 재미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부의 편중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어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 아주머니는 남은 인생을 오로지 육체노동에만 바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큰 특권을 쥐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고, 동시에 노동자계급에 강한 부채감을 느꼈다.
사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부채감, 혹은 부에 대한 막연한 적개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부들과 다를바가 없다.
올림픽이 한창인 요즘이기는 하지만 올림픽의 이면에 있는 것들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같다. 영국같은 선진국이 아닌 개도국이나 후진국에서는 진짜로 국익을 가장한 합법적인 탄압이 있을런지 모른다.
나무를 보지말고 숲을 보라 말하지만 정작 숲만 보면 나무는 못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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