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지에서 밤에 혼자 모텔에서 뒹굴거리다 잠이 안와서 여기저기 돌려보다 보니 법정 장면이 보이길래 시선을 고정시켰다. 무슨 영화인가 보니 작년 이맘때 대한민국을 경악으로 물들인 '도가니'다. 나는 이 영화를 안봤었다. 그 내용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였었지만, 영화가 이미 중반부에 접어들어 법정싸움이 주가 되었기에 큰맘 먹고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본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내용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이 영화를 영화로 바라보고 리뷰를 남기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기에 이 안에 담겨진 성범죄에 관한 이야기로 대신하고자 한다.
먼저, 성폭력(특히 아동)과 살인. 둘 중 어느 범죄가 더 나쁜 일일까.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살인이 더 나쁜 범죄다. 성폭력이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인 파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살인은 피해자의 육체와 정신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그렇고 많은 이들이 살인보다 성폭력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걸까.
이 영화에는 크게 4개의 범법행위가 나온다. 먼저 장애아를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영화후반부에 자신을 가학한 선생을 죽이는 민수의 살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외면하는 사법부의 배임과 비리, 마지막으로 청각장애인들의 집시법 위반까지. 맨 처음의 논리에 따르면 민수의 살인 행위가 성폭력보다 더 나쁜 범죄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또, 집시법 역시 많은 문제점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엄연한 법이고 이에 대한 논란은 찬반의 여지가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시위가 정당하고 경찰력이 악으로 비추어지는 이유는 뭘까. 도대체 범죄의 악을 유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범죄의 동기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부분의 범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거나(강도, 절도) 분노의 폭발(살인)이 그 원인이 된다. 그러나 성범죄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행하는 범죄라는 측면으로 구분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분유를 훔친 가장은 동정하지만 장난삼아 영세한 슈퍼마켓의 물건들을 망가뜨린 고등학생의 범죄에는 분노한다. 비슷한 수준의 범죄에도 이렇게 반응하는것은 그 동기가 단순히 이익과 분노의 측면에서 이루어졌는가, 쾌락에 의해 이루어졌는가가 우리에게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성범죄는 자신의 쾌락을 위한다는 점에서 토막살인을 즐기는 싸이코패스의 범죄와 동등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특히나 약자중에서도 약자만을 대상으로 한 이번 범죄는 그 동기와 과정이 최악인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4개의 범죄중 3개는 나름 이해가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장애아들의 고통을 외면한 사법부는 비난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 판사와 검사 개인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솔직히 나도 내 자신의 이익이 남의 고통보다 우선한 적이 있다) 또 직업인으로서 시위를 진압해야 하는 경찰들의 고충도 이해 하는 사람도 있겠다. 민수의 살인이야 말할것도 없겠고.. 그러나 이 자애학원의 성범죄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건 싸이코패스의 영역이니 일반인이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최근 아동 성범죄, 뭇지마폭행 등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범죄들은 모두 이 동기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법체계는 누가 어느정도의 가해를 했는가가 주가 되고, 동기는 형량을 조절하는데 있어 참작될 뿐이다. 그러나 동기에 대한 점을 세밀하게 바라보는 법질서가 생길 때 우리는 상식적인 법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영화 '도가니' 이후 재조사가 진행중이라 들었다. 끝까지 주시하고 있어야 하겠다.
도가니 (2011)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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